새해 모두들 강녕(康寧)하시지요?
새해 모두들 강녕(康寧)하시지요?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2.15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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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문방사우]
계족산 황톳길. 대전시 제공
계족산 황톳길. 대전시 제공

설이 시작되는 건 사실상 섣달 그믐밤(구랍 12월31일)부터다. 예전엔 온 집안에 불을 환히 밝혀놓고 밤을 새워가며 조왕신을 기다렸다. ‘수세(守歲)’라는 풍습이다. 조왕신이 부엌에서 식구들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다가 섣달 스무 나흗날 승천해 옥황상제께 고한 후 그믐밤에 다시 온다고 믿었다. 조왕신을 기다리지 않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들 했다.

마스크로 동여맨 숨 막히는 일상 탓에 서로 잊고 사는 게 흉이 아닌 세상이 돼버렸다. 더도 덜도 말고 설날만은 한데 모여야 하고, 한데 날밤을 보내야하건만 이 모든 것이 ‘악몽의 베일’속에 가려졌다. 찾아갈 곳은 있지만 찾아가도 민망한 세상, 찾아가려고 해도 오지 말라 손사래를 치는 세상. 우리의 시간은 1년 전 설날에 머물러 있고 1년 후 설날도 기약할 수 없다. 모이면 더 위험해지고, 흩어지면 덜 위험한 세상이니 잠시 안녕을 고할 수밖에. 조용히 강녕(康寧)을 여쭙는다.

설의 가장 큰 일은 아무래도 차례다. 차례는 ‘조상을 간략히 받드는 망참(望參:음력 보름날 사당에 절하고 뵙는 일)에 차(茶) 한 잔만 올린다’고 한데서 유래된 만큼 계절음식으로 정성껏 지낸다. 사기(邪氣)와 역신을 물리치려 황금갑옷을 입고 도끼를 든 장군이나 붉은 도포에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한다. 복조리는 조리로 쌀을 일 때처럼 그해 행운을 일구고 싶은 바람에서 건다. 덕담 또한 중요한 식례(式禮)다. ‘꼭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돈 많이 버시오, 결혼하시오, 건강하고 화목하시오’ 등등. 어른들로부터 듣는 덕담 한마디는 한 해 동안 가슴에 새기고 다니는 금언이고 한 가정의 좌표다. 하지만, 올해는 덕담도 참으시라. 자칫하면 잔소리로 치환될 소지가 있다. 사는 게 퍽퍽하고 힘겨운데 덕담이랍시고 잘못했다간 악담으로 들린다.

‘설’은 ‘사린다’는 뜻도 지녔다.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날이라 해서 세수(歲首) 원일(元日)이라고도 불린다. 1년 동안의 무사함을 기원하면서 바깥 외출을 금하는 의미의 신일(愼日)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기국물로 끓이는 떡국은 힘을 내라는 의미이고, 떡국의 모양은 엽전을 닮아 부자를 기원하는 것이다. 쌀이 귀했던 옛날엔 빚을 내서라도 귀한 쌀을 구해 가래떡을 만들었다. 떡을 길게 뽑아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아 떡국을 나눠 먹으면 한 해 동안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새해 하루만큼은 잘 먹어야 한 해 동안 배곯지 않는다.

말이 설날이지, 사실상 신축년도 40일이 지났다.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보낸 비루먹을 시간들이다. 펜데믹(pandemic: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시대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잡초의 삶이다. 밟히고 뭉개지면서도 다시 뿌리를 뻗는 잡초 같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잡초’라는 건 없다.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잡초일 뿐이지, 실제로는 잡초가 아니다. 사람이 농사짓고 생활하는데 방해가 되니 잡초라 부르는 것이다. 잡초는 그냥 야생초, 들풀, 약초로 불리어야 옳다. 잡초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잡초는 ‘무용지용(無用之用: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인 것이다. 잡초가 작물과 경쟁해서 백전백승하는 이유는 잡초는 자연 상태로 있고, 작물은 우리가 원하는 부분만 발달시키려고 억지로 변형시키기에 그렇다. 결국 잡초는 인간의 편의에 의해 죽고 또 죽는다.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이란 없다. 우리가 그 이름을 모를 뿐이다.

이번 설날만큼은 진짜 ‘잡초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지긋지긋한 정치도, 팔다리 저려오는 경제도 잠시 잊고 떡국 맛나게 자시면서 행복한 날을 보내시길 권면한다. 그리고 조용히 비대면 안녕을 묻자. 이 험한 세상에서 용케도 안녕하다고. 또한 앞으로도 이 험한 세상에서 안녕할 거라고. 그늘진 하루에도 볕들 날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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