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과 잡탕···그리고 속풀이와 화풀이
매운탕과 잡탕···그리고 속풀이와 화풀이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3.23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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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 문방사우]

음식에는 딱 두 가지가 있다.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 혹자는 중간 맛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건 밍밍하거나, 값을 매기기 애매하니 ‘맛없는 맛’에 속한다. 물론 개복치(복어)란 녀석은 돼지껍데기와 돼지살코기의 중간 맛이긴 하다. 하지만 ‘중간 맛’도 맛있다고 평한다면 ‘어설픈 미식가’일 것이고, 맛없는 맛도 맛있다고 평한다면 ‘식탐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느끼는 맛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매운 맛(5味)이다. 하지만 이 맛을 개별적으로 놓고 보면 맛이 없다. 그래서 제5의 맛, 감칠맛이 필요하다. 감칠맛은 다랑어포나 멸치, 건새우, 표고버섯, 다시마 등에서 추출하는 게 정석이지만 MSG(글루탐산나트륨)를 넣으면 복잡한 과정이 생략된다. 이 MSG가 쉽게 말해 라면 스프 아닌가. 이 마법의 가루만 있으면 웬만한 음식은 맛있는 맛으로 기적을 낳는다.

짠맛, 단맛, 신맛, 쓴맛은 섞여야 맛이 나기 때문에 개별적인 중독성이 없다. 하지만, 매운맛은 또 찾게 되는 맛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맵고 뜨거운 국물을 먹으며 ‘시원하다’라는 말을 연발한다는 사실. 탕(湯)을 들이켜도 시원하다, 열탕(湯)에 들어가서도 ‘시원하다’고 한다. 이는 반어법일 수도 있고, 이열치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맵고 뜨거운 것이 몸에 들어가면서 열과 땀이 나 체온을 식혀주기에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의 혀엔 매운맛을 느끼게 하는 L-글루타메이트 수용체가 있는데, 이 통증과 고추의 캅사이신이 결합해 ‘속은 뜨겁게, 겉은 차갑게’ 만든다. 시원하다는 것은 온도의 개념보다 느낌의 개념이다.

해장음식으로는 육개장, 짬뽕, 감자탕, 부대찌개, 매운탕, 설렁탕, 북엇국, 콩나물국, 추어탕, 우거지 해장국, 황태해장국, 순댓국, 연포탕(낙지탕), 갈비탕, 굴국밥, 매생이국, 재첩국 등이 있다. ‘속풀이’는 전날 마신 술로 거북해진 속을 가라앉히는 일이니 개운하거나, 담백하거나, 시원해야한다. 속과 영혼을 감싸주니 소울(soul)푸드다.

매운탕은 처음부터 생선을 토막 내어 끓이기도 하지만 민어처럼 큰 생선을 우선 횟감으로 살을 떠내고 나서 남은 머리나 내장을 모아 고추장을 풀고 찌개를 끓이는데 이를 서돌찌개라고 한다. 원래 ‘서돌’이란 말은 서까래, 도리, 보, 기둥 등의 통칭인데 척추동물인 물고기에 빗대어서 생선의 대가리, 등뼈, 꼬리 따위로 살이 안 붙은 등신을 서돌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횟감을 먹고 난 뒤 나오는 탕을 모두 매운탕이라고 부를까. 광어를 먹었으면 광어탕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아귀탕, 생태탕, 꽃게탕은 나름대로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지만 횟집의 탕은 그냥 ‘매운탕’으로 통칭된다. 고춧가루를 원폭 수준으로 잔뜩 넣었으니 ‘매운탕’이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나, 어쩌면 ‘매운탕’이란 정체성을 잃은 이름표다. 본인이 바다생선인지, 민물어류인지 토막을 보지 않고는 알 길이 없으니 그렇다.

그래서 혹자들은 매운탕을 원적지가 불분명한 잡탕으로 취급한다. 그냥 매우니까 매운탕이고, 고춧가루 범벅이니 매운탕이라는 것이다. 이는 먹다 남은 모둠전을 자투리 채소와 재료들을 왈칵 붓고 끓이는 섞어찌개와 다를 바 없다. 탕과 찌개는 국물 양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 이웃사촌이다.

각설하고, 입맛 돋우는 봄이 왔으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입맛이 없어진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과 정치인,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소식에 단칸방을 벗어나려 했던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여기에 정치권은 재.보선에 함몰돼 국민생계 걱정은 안중에도 없다.

진짜 잡탕이다.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한다. 정당에 묻히고, 술수에 묻히면서 그냥 잡고기 매운탕이 돼버렸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남의 동네 얘기지만, 서울과 부산은 ‘성추행’에 의해 도륙된 1년2개월짜리 수장을 뽑는다. ‘성추행범’이 지나간 자리를 누구로 메우느냐의 절박함은 단지 인물과 공약의 문제가 아니다. 겨우 14개월 동안 그 동네를 천지개벽 시키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매운탕처럼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들의 한바탕 정쟁은 마구 뒤섞여 본연의 실체를 상실한 이전투구다. 

민심은 화풀이 할 곳이 없다. 속풀이를 하고 싶어도 그들은 매운탕 같은 잡탕일 뿐이다. 이번 선거는 ‘잊혀져가는 성추행범’에게 단죄를 물어 그 기록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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