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과 정치 엔딩
벚꽃 엔딩과 정치 엔딩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3.30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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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문방사우]
천안시 제공

봄 사이로 벚꽃이 팝콘처럼 튄다. 볕 오른 곳이라면 어디든 피었다. 벚꽃은 채근할 때 보지 않으면 때를 놓친다. 화들짝 피었다가, 화들짝 죽는다. 한눈이라도 팔면 벚꽃구경은 없다. 더욱이 봄비라도 내리면 지상의 꽃은 꽃비가 되어 순식간에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벚꽃은 찰나의 꽃이고, 묘령의 변심 같기도 하다.

더더구나 이들은 ‘다 함께’ 피었다가 ‘한꺼번에’ 진다. 개별성을 갖지 않는다. 한 잎, 한 잎이 모여 생명의 비장미와 극치미를 절정까지 끌어올렸다가 한순간에 불꽃처럼 소멸한다. 절정은 아름다움의 서막이 아니라 끝이다. 탄생과 죽음이 동시간대에 이뤄진다. 온몸의 진액을 모두 끌어올려 불태우는 장렬한 소진은 가장 극적인 낙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일년을 힘들게 기다렸는데 일주일 새 가벼이 가니 가엾다.

벚꽃은 유독 꽃잎이 얇다. 그래서 하나하나 흩날리듯 떨어진다. 꽃비다.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이 잎겨드랑이에 2~3송이씩 모여서 핀다. 꽃말은 순결이다. 마음 한 켠을 아리게 하는 그 연약한 존재성은, 사실은 아주 단단하다. 그래서 벚나무는 조각재, 칠기, 인쇄용 목재로 많이 쓴다. 고려팔만대장경판도 벚나무로 깎았다. 벚꽃의 경우 온도의 차이에 민감해 나무의 아래쪽과 위쪽의 개화시간 차이가 뚜렷하다. 벚나무가 날씨를 알아보는 것은 기온 변화에 대응하는 ‘온도계 단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화신(花信:꽃소식)은 남쪽으로부터 온다. 보통 진달래가 개나리보다 하루 늦게 피고, 다음에 목련이 핀다. 벚꽃은 개화일로부터 보통 7일쯤 후에 만개한다. 봄꽃의 개화 시기는 하루에 약 20~30㎞ 정도 북상하는데 이 속도는 가을에 북쪽에서 내려오는 단풍의 속도와 같다. 때문에 가을은 북쪽에서 오고 봄은 남쪽에서 온다. 화신은 벌과 나비가 나오는 시기에 맞춰 꽃을 피우면서 스스로의 생존법을 갖게 한다. 만일 꽃들이 제멋대로 피고지면 지천(池川)에는 사랑 받지 못할 꽃들로 난장판이 될 것이다.

봄의 정령을 담은 꽃들이 피고 질 때, 이 지상에도 더럽고 추잡한 꽃들이 피고진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 했거늘, 정치는 여전히 번잡하게 피고진다. 저마다 군국주의의 꽃을 틔우고 표밭을 기웃거린다. 더더구나 요란스럽게 피었다가 조용히 진다. 이들은 ‘다 함께’ 피었다가 ‘혼자서’ 진다. 스스로 개별성을 갖는 것인데, 수치심도 없다. 산화하는 모습조차도 추하다.

금세 질 것을 알면서도 싹을 틔우고, 열매까지 탐하니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어이없는 개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왜 정치인만 모르고 있는 걸까. 아니, 왜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걸까. 권세와 세력을 좇는 그 꽃의 정령이 불결하기 이를 데 없다.

난센스지만 사쿠라가 절정을 이룬 곳은 우리나라 국회 뒤편이다. ‘사쿠라’는 낮에는 야당행세를 하지만, 밤에는 여당노릇을 하는 정치인을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국회 옆의 사쿠라, 사쿠라와 정치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남녘(경상·전라)에서 북상하는 루트도 그렇고, 처음에는 희망을 품고 피웠다가 단시간에 그 생명을 다하는 성상도 그러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쿠라처럼 ‘통석의 염’을 하지만 벚꽃과 정치의 종말은 비참하다 못해 비굴하기까지 하다.

한동안 재난지원금이다 뭐다 해서 마치 ‘자기 돈’처럼 생색을 내던 정부가 요즘 세금 걷기에 바쁘다. 부동산 잡겠다고 공시가격을 슬쩍 올려 재산세·종합부동산세 폭탄을 떠안기고 있다. 이건 세금이 아니라 거의 수금 수준이다. 하지만 명심해라. 세금을 개념 없이 걷는 정권은 망한다. 역사적 교훈이다.

캐나다에서 인기가 엄청 좋았던 브라이언 멀로니(개혁보수당)는 세금을 잘못 걷어 몰락했고, 미국 부시 대통령도 세금을 조금 올렸다가, 지방선거는 물론 대선에서 참패했다. 노무현정권도 그랬다. 국민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여긴 군주치고 제대로 성공한 이는 없다. 지금의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처럼 여론과 민심을 철저하게 도외시, 백안시하고 독주하고 있다. 오십보백보다.

사쿠라(벚꽃)는 ‘변절자’를 가리킨다. 일본어의 ‘사쿠라니쿠’에서 비롯됐는데, 사쿠라니쿠는 색깔이 벚꽃과 같이 연분홍색인 말고기를 지칭한다. 쇠고기인 줄 알고 샀는데 먹어보니 말고기였다는 얘기다. 즉, 겉보기는 비슷하나 사실은 다른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정치와 벚꽃과 일본은 다른 듯 같은 ‘가미가제’다. 전투기 앞에 벚꽃 문양을 그려 넣고 자폭하는 사쿠라 꽃잎이다. 그들의 야만성은 결국 핏빛으로 물들어 자멸을 부른다.

한없이 가벼운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며 벚꽃의 가벼움을 발견한다. 잠시 왔다가는 저 벚꽃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열흘이다. 진짜 화무십일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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