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뱁새’와 위정자 ‘뻐꾸기’
국민 ‘뱁새’와 위정자 ‘뻐꾸기’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4.20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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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문방사우]
미디어붓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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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는 얌체 같은 새다.

직접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다. 뻐꾸기는 멧새나 종달새, 개똥지빠귀,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큰유리새·쇠유리새, 미국 물닭, 미국찌르레기, 개개비가 둥지를 비운 사이 자신의 알을 낳아놓고 사라진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혹시라도 둥지의 진짜 주인이 알아차릴까봐 원래 있던 알 한 개를 물고 가버린다. 이런 식으로 10개 이상의 둥지를 찾아다니며 알을 낳는다. 그리곤 자신의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둥지 주위를 떠나지 않고 몰래 지켜본다.

뻐꾸기 새끼도 용의주도하다. 보통의 알이 부화하는데 보름 정도 걸리는데 반해 뻐꾸기 알은 9일이면 깨어난다. 부화 후 10시간이 지나면 제 잔등에 야문 것이 닿았다 하면 날갯죽지를 뒤틀어 집주인 새끼를 바깥으로 밀어내버린다. 남의 둥지에서 남의 어미에게 먹이를 날름날름 받아먹는 처지이건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본 주인의 새끼를 살육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리모(代理母)인 멧새, 종달새, 뱁새는 제 새끼가 아닌 것도 모른 채 뻐꾸기 새끼를 금이야 옥이야 보살펴 키운다. 그러나 키운 공을 모르는 뻐꾸기 새끼는 날갯짓이 가능해지면 훌쩍 사라져 버린다.

제 알을 제가 품지 않고 딴 새둥지에 몰래 집어넣어 새끼치기 하는 것을 탁란(托卵)이라 하는데 지구촌 전체 새의 약 1%가 탁란조(鳥)다. 탁란은 일종의 ‘부화기생’으로 기생 새와 숙주 새는 알의 색깔이 아주 비슷하다. 

탁란은 그저 남의 새끼 하나 더 기르는 부담을 넘어선다. 부리가 닳고 깃털이 다 망가지도록 비바람을 막고 정성껏 키워내는 숭고한 헌신이다. 하물며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장본인은 바로 자신의 새끼를 죽인 어린 살인자가 아닌가. 그래서 ‘뻐꾸기가 둥지를 틀었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웃기는 일을 비꼬는 말로 치환된다.

새호리기(새홀리기: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두견새, 매사촌, 검은등뻐꾸기도 이 둥지 저 둥지를 배회하면서 사방에 알을 낳는 한통속 탁란조들이다. ‘새호리기’라는 이름은 작은 새들을 홀려서 잡아먹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까치나 큰부리까마귀 등이 사용하던 둥지를 재사용한다. 뻐꾸기의 이런 행동을 최초로 기록한 이가 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이니 그 역사도 깊다.

물고기 가운데는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수에 사는 ‘메기’가 입속에서 부화시키는 시클리드에 탁란한다. 또 우리나라의 돌고기는 꺽저기의 산란장에 침입해 자신의 알을 낳고 도망치며, 감돌고기는 꺽지의 산란장에 탁란한다. 곤충 가운데는 다른 벌통에 자기 알을 낳는 ‘뻐꾸기 꿀벌’과 ‘뻐꾸기 말벌’이 있다.

뻐꾸기의 탁란은 고도의 생존전략일까? 아니면 무책임한 부모노릇일까? 어떤 이는 인생이 힘들 때를 두고 ‘탁란의 인생’이라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고, 그리하여 세상에 던져졌고, 정글 같은 세상에서 생존법칙을 배우며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 한쪽에선 사랑과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고, 한쪽에선 얌체처럼 받아먹는 게 요즘이다.

실업과 만혼 등으로 30대 이후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경제적 도움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을 ‘빨대족’이라고 하고, 독립해 집을 나갔지만 전세금과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연어처럼 원래 살았던 집으로 회귀하는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을 ‘연어족’이라 지칭한다. ‘뻐꾸기족’은 부모에게 아이를 대신 키워달라고 하는 신세대 젊은 부부, 또는 남의 힘으로 살아가는 얌체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들을 탓할 근거는 부족하다. 누가 의도적으로 ‘탁란’을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둥지를 ‘탁란’으로 내어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의 유죄를 좇다보면 종장엔 위정자들에게로 심증이 간다. 국민들은 졸지에 ‘탁란’신세가 돼 먹이를 물어다 바치고 괜한 먹이사슬에 시달린다. 서푼도 되지 않는 먹이(지원금)를 쥐어주고는 이내 세금폭탄을 때려 먹이를 걷어가는 식이다. 과연 저들이 뻐꾸기들과 뭐가 다른가. 선거철에만 국민들 둥지로 반짝 왔다가, 포동포동 살이 오르면 야멸차게 떠나버리는 탁란조와 뭐가 다른가.

배로 낳은 어미와 가슴으로 기른 어미, 두 어미를 가진 뻐꾸기는 어른이 되면 또 남의 둥지에 제 살붙이를 몰래 던져놓으며 기생할 것이다. 그 야비한 DNA가 바로 정치이고 탁란조가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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