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의 깊이, 사람의 깊이
인맥의 깊이, 사람의 깊이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3.05 19: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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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7일은 개인적으로 기록에 남는 날이다. 차가운 머리로 뜨겁게 사표를 낸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창밖엔 식지 않은 겨울이 웅크리고 있었고 바람은 체온보다 냉랭했다. 내연기관의 입김은 당혹스럽게도 겨울보다 빨리 얼었다. 그리고 천국을 보았다. 행복이 밀물처럼 눈앞에 물결쳤다. 이렇게 행복한 것을 왜 진작 맛보지 못했을까. 왜 그토록 아웅다웅 했을까. 지옥 같던 나날들. 밤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 끙끙대던 절망의 나날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이별의식을 끝내자, 곧바로 사람이 그리워졌다. 얄궂도록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인생은 모래시계다. 한쪽이 비워지면 한쪽이 채워지는, 뭐 그런 질량불변의 법칙 같은 것 말이다. 인맥도 똑같은 질량으로 똑같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슬프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던가.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던가. 선분홍의 단풍이 몸서리치며 적갈색으로 변하고 있는 가을, 단풍의 이별을 생각한다. 단풍은 나무와 잎이 서로 이별하는 행위다. 곧 사라질 것들이 남기고 가는 마지막 선물이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랑에 탐닉하고 있을 때 꾸었던 싱싱한 꿈들은 이별 후엔 뇌를 갉아먹는 상처로 남는 법이다. 때문에 상실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겪는 그 고통은 이 지구상에서 수만, 수백만 사람이 겪었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는 이별을 했고 오늘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이 또한 훗날엔 이별을 위한 만남일 것이다. 이별도 연습이 필요하다. 만약 1명의 ‘친구’가 있다면 기꺼이 ‘더불어’를 외칠 수 있는 게 사람이고, 사랑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 남에게 먼저 대접해야한다. 이게 황금률 아닌가.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겐 ‘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도 나에겐 ‘짐’이다. 안고 가야할 숙명이 아니라, 안고 가기 버거운 상처다.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을 피해가기가 먼저 어려운 일이고, 그 사람과 악연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가 또한 어려우며, 잘못된 인연으로 후회하지 않기가 제일 어렵다. 단 1명만이라도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나고 싶다.

▶사람도 장사다. 만나면 이윤을 남겨야 한다. 무조건 퍼준다고 해서 ‘사람’이 ‘사랑’이 되진 않는다. ‘인연’이 ‘연인’이 되지 않듯.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더 어렵다. 독불장군처럼 오만불손한 그대여, ‘남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고 ‘타인의 인생에 내 삶이 조금이라고 깊고 진하게 박힐 수 있도록’ 손을 먼저 내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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