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3.1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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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속에 나오는 자연인은 한마디로 원시인이다. 세상에서 격리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와 결별했다. 이들은 무엇인가를 ‘잃고’ 산으로 숨어들었다. 대체로 건강을 잃었거나, 이혼을 했거나, 사업에 실패했거나, 인간관계에 치인 종족이다. 장삼이사들은 '말종'이자 '도피'라고 몰아붙인다. 문제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되지 않는다는 거다. 역설적이긴 해도, 자연인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풀뿌리를 먹는 한이 있어도 구걸하지 않고, 추위에 덜덜 떠는 한이 있어도 생(生)의 잔고를 확인하지 않는다. 오십 줄이 넘은 움막 한켠에는 30~40대 치열하게 살던 흑백사진이 훈장처럼 놓여있다. 그건 자랑이 아니다. ‘봄’같았던 삶을 기억하며 ‘겨울’을 잊는 처절한 되새김이다. 자연인이 웃고 있다면 진짜 울고 싶은 거다.

▶무엇인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늙어간다는 징조다. 그 외로움은 불량하게 시들고 싶지 않다는 반항이다.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욱'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때때로 '욱'한다. '욱'하면 패하는 줄 알면서도 ‘욱’한다. 육신에 이상한 버릇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 밥맛없는 사람에게 '욱' 할 바엔 차라리 웃는 얼굴로 안녕을 고하는 게 편하다. 아침잠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라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말은 틀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많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도 틀려먹었다. 아침잠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늙으면 잠도 소멸한다. 해질 무렵의 오후다.

▶나이가 들면 자꾸만 작아진다. 먹고 살 생각 때문에 작아지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작아진다. 꿈의 크기와 마음의 용량이 작아지고 미래의 영향력도 작아진다. ‘작아짐’은 내려놓고 싶지 않은데 내려놓아야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괜찮다’는 말은 ‘난 아프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화나지 않는다'는 말은 '화가 나지만 참는다'는 거다. 미소는 역설적이지만 행복하지 않을 때 자주 나타난다. 딸의 감정은 어머니에게 전염되는데, 어머니의 감정은 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세월(歲月)은 파괴적이다. 기억을 잠식한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가느냐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 인생의 레시피는 내가 뭘 좋아하느냐 보다, 누가 뭘 좋아하느냐에 맞춰져있었다. 하지만 답은 반대쪽에 있다. 때론 양파처럼 눈물 나게 하고, 때론 막 섞여도 어울리는 라면수프(MSG)같은 사람이 시대가 요구하는 호감형이다. 배추는 소금을 만나야하고, 명태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만나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굳이 파릇파릇한 채소가 아니어도, 굳이 펄떡이는 고등어가 아니더라도 그냥 좋은 '양념'처럼 사는 게 좋다. 인생 레시피에서 중요한 건 ‘대충’ 살더라도 ‘제대로’ 사는 일이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것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자연인은 무서워서 도피하지 않는다. 더러워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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