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추위와 고단함을 함께했던 연탄도 사그라들고…
서민의 추위와 고단함을 함께했던 연탄도 사그라들고…
  • 최진섭 기자
  • 승인 2019.03.24 13: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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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미디어붓DB
연탄. 미디어붓DB

몇 년 전만해도 ‘추억’이라는 전략을 내세워 몇몇 식당에서 연탄구이를 팔기도 했는데 요즘은 연탄구이집을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난 겨울도 그다지 춥지 않아서인지 연탄과 관련된 이야기를 쉽게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정말 ‘연탄’이 서서히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자리를 옮기려나 봅니다.

요즘은 겨울을 앞두고 저소득층 가정이나 독거노인 가정에 연탄을 배달해주는 것이 사진 찍기 좋은 봉사 활동 -사실 이제는 매년 연탄을 배달해주는 것 말고 더 안전하고, 더 효과적인 난방 대책을 마련해 줘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탄 배달하면서 사진 찍는 것에 열중하는 것 말고,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들의 겨울철 난방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접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됐지만, 예전에는 겨울 준비 중 김장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탄을 쌓아두는 일이었습니다. 창고에 연탄이 그득하게 쌓이면 어머니, 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곤 했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 시절까지 연탄을 갈았던 것 같습니다. 매우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매캐한 냄새가 싫었고, 불구멍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이불 속 온기를 걷어내고 뼈 속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한겨울 찬바람 속으로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겉옷을 껴입는 것 마저 귀찮아 얼른 갈고 들어가자 하는 마음에 내복 차림으로 나가 연탄을 갈 때면 연탄도 그런 제 마음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곤 했습니다.

위 아래 연탄 두 장이 사이좋게 늘러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연탄집게로 들어 흔들어 보기도하고, 위 아래로 연신 튕겨 보기도 하지만, 한 번 붙어버린 연탄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슬슬 짜증은 올라오고, 가스 냄새에 머리도 어지럽고……, 여기서 평정심을 잃게 되면 결국 연탄 두 장은 박살이 나고 맙니다. 몇 초간 멍하니 깨진 연탄을 내려다보다 어머니에게 혼이 날까 싶어 다시 조용히 들어가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나와 꺼뜨린 연탄에 다시 불을 붙이는 한심한 짓을 해야했습니다. 5분이면 끝날 일을 30분이 넘도록 해야 하는 미련함을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어린 마음에 아파트는 당연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그런 천국 같은 곳인지 알았던 것이죠.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날 ‘아~ 이제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연탄 가는 일은 없겠구나’ 했는데, 웬걸요, 현관문 옆에 떡하니 연탄아궁이가 있었습니다.

아파트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인간이 살기에 최적의 온도를 맞춰주는 그런 곳이라고 믿었는데, 아파트에서도 연탄을 갈아야 한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동심은 파괴되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연탄 갈이의 고단한 숙제는 한 겨울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굿 나잇 인사는 항상 들을 수 있었죠. “연탄 갈고 자라!”

한때는 연탄을 실은 트럭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겨울이 임박해 왔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몇몇 사진 속에서나 연탄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인간이 살기 좋게 바뀌면 바뀔수록 불편한 것들은 당연히 점차 사라져야하는 것인데 어쩐지 마음 한 켠에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앞선 이야기와 특별한 관련이 없는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연탄’하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짧은 몇 마디에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좋습니다. 연탄은 한 시대를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데, 과연 나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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