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헌’과 ‘김학의’
‘지강헌’과 ‘김학의’
  • 나인문 기자
  • 승인 2019.03.26 15: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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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권총을 탈취해 서울시내로 잠입하는 탈주사건이 발생했다.

죄수들이 무더기로 탈주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당시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던 지강헌이 던진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냉소어린 조롱이 세상을 더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의 탈주극이 560만 원을 절도한 자신은 무려 17년형을 살아야 되는데 600억 원을 횡령한 전경환(전두환의 막내동생)이 겨우 7년형(실제론 2년 만에 풀려남)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하면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슷한 죄를 짓고도 사회적 계급이나 권력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 세태를 꼬집었다는 점에서 ‘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의 가치는 그에게 불편한 진실로 다가왔을 터였다.

어찌 보면 그의 말은 사법부와 황금만능주의를 대놓고 비판했다는 점에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검찰 재수사가 사실상 재개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지 국민적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이미 2차례 수사에서 무혐의로 종결한 사건을 5년 만에 또 다시 수사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만큼은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때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정점에 오르려던 그가 지난 22일 밤 태국행 항공기를 몰래 타려다가 긴급출국금지를 당한 걸 보면, 스스로 죄상이 밝혀지는 게 두렵긴 두려웠던 모양이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차관으로 발탁된 그는 2007∼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 씨 소유의 별장 등지에서 특수강간을 저지르고 성 상납 향응 및 돈을 받은 의혹을 받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대검 진상조사단의 출석요구에도 계속 불응하다 모자를 눌러쓰고 넥 워머(neck warmer)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심야에 몰래 출국을 시도하다 발길을 되돌려야 했던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왕복 티켓을 구입해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려고 했기 때문에 '도피'는 아니다”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심야에 그것도 몰래, 변장한 친척을 앞세워, 비행기를 타려던 진위가 무엇이란 말인가.

“전직 고위 검사가 조사에 협조는커녕 심야 0시 출국이라니, 국민을 뭘로 보고 그랬느냐"는 진상조사단의 질타를 귓등으로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재수사에서는 2013년과 2014년의 수사가 흐지부지된 경위와 그를 비호한 세력이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경찰이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특정하고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이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된 전말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특히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의 입김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모든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그가 법무차관으로 내정되기 전 경찰이 성 접대 의혹 첩보를 확인할 당시 청와대 민정라인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 이후 경찰 수사라인을 부당하게 교체했다는 의혹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

물론, 김 전 차관 사건의 재수사를 앞두고 검찰을 불신하는 여론이 여전한 만큼, 특별검사 도입론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특별수사팀을 꾸리든, 특임검사를 임명하든 수사속도가 관건이다. 얼마 남지 않은 공소시효를 날려버리는 늑장 수사나 정치적 고려가 개입하는 수사는 더 이상 용납하면 안 된다.

이미 2차례 수사에서 무혐의로 종결한 사건을 5년 만에 또 다시 수사하게 된 만큼, 검찰은 나락으로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이번에는 꼭 명운을 걸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

그 것만이 돈과 권력만 있으면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라는 잘못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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