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복 장관의 ‘뭉클한 이임식’ 산불현장에서 임기 마친 김부겸
민방위복 장관의 ‘뭉클한 이임식’ 산불현장에서 임기 마친 김부겸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4.07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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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이임식 취소하고, 4월 5일 밤 11시 화재 현장에서 '유종의 미'
제천화재·밀양화재 등 재해현장에 가장 먼저 찾아가고 가장 늦게 철수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5일 오후 강원 강릉 옥계면사무소에서 열린 산불 수습현장대책회의에서 진영 신임 장관에게 업무를 인수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5일 오후 강원 강릉 옥계면사무소에서 열린 산불 수습현장대책회의에서 진영 신임 장관에게 업무를 인수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지금 강원도 고성에 있습니다. 바람이 미친 듯 불어댔습니다. 그 바람을 타고 불티가 사방으로 날아다니는데 정말 아찔했습니다. 돌아보면 취임식 바로 다음날 찾아갔던 재난 현장이 가뭄에 바닥이 쩍쩍 갈라진 충북 진천의 저수지였습니다. 그러더니 이임식이 예정된 오늘도 나무들이 타는 연기와 냄새로 매캐한 현장입니다. 여러분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저도 큽니다. 하지만 현장을 지키는 것이 장관의 본분이기에 이임식을 취소키로 결심했습니다. 오늘 밤 12시면 저의 임기는 이제 끝이 납니다. 저녁에 신임 장관님이 도착하시면 상황을 인수인계 해드리려 합니다. 그러고 나서 저도 퇴근할까 합니다. 어제부터 못 잔 잠을 좀 자야겠습니다.”

학생운동가 출신인 김부겸은 4선 국회의원이다. 1978년 유신헌법 반대(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사유로 1981년 병역 소집이 면제됐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 2번의 구속으로 제적과 복학을 반복했다. 제정구 의원을 정치적 스승으로 모셨다. 1990년대 민주당에 입당했고,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 조직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2000년엔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으로 인해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도 군포에서 국회의원에 입문했다.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고 2004년, 2008년 연속으로 당선됐다.

2012년 대구 수성구 갑으로 지역구로 바꿔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14년에는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2016년 대구 수성구 갑에서 62.3%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대구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건 신도환 국회의원 이후 31년만이었다.

그는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행안부·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취임했고 1년9개월 동안의 장관직을 이임식 없이 강원 화재 현장에서 마쳤다. 장관 임기 1시간을 남겨둔 5일 밤 11시께 진영 신임 행정안전부 장관과 강릉·동해 산불 현장대책본부를 찾았다. 산불 대응 상황을 보고받고, 현장 점검을 하기 위해서였다.

김부겸 전 장관은 당초 정부세종청사에서 이임식을 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전날 강원 산불사태가 터졌고 그는 직원들과 작별인사 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임기를 끝냈다. 김 전 장관은 언론에 보낸 이임사에서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재난과 사고가 최대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어렵다”며 “재난의 대비, 대응, 복구만이 아니라, 예방까지도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제천 화재, 밀양 화재 등 크고 작은 사고·재해 현장에 그는 가장 먼저 찾아갔고, 가장 늦게 철수했다. 심지어 2017년 포항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연기할 때도 행정안전부 장관인 그의 판단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탓에 재난 상황에 공직자들이 입는 노란 점퍼 '민방위복'은 마치 그의 평상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김 전 장관은 “행안부장관으로 임명됐던 것은 지역주의에 맞서 작은 몸부림이나마 쳤던 정치인이라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정치를 고려하지 않는 행정은 독단이고, 행정을 염두에 두지 않는 정치는 무능하다"며 국회로 돌아가면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임기 종료 후 국회의원으로 복귀했다. 다음은 김부겸 전 장관의 '이임사' 전문이다. 가슴뭉클한 내용이 많아 내용 전체를 싣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5일 오후 속초·고성 산불로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를 방문해 이재민인 장동욱, 함상애 씨 부부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5일 오후 속초·고성 산불로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를 방문해 이재민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행정안전부, 그리고 경찰청과 소방청 공직자 여러분!

저는 지금 강원도 고성에 있습니다. 어젯밤에 도착할 때만 해도 도로 옆 야산에 불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미친 듯 불어댔습니다. 봄이면 양양과 간성 사이를 휩쓴다는 양간지풍입니다. 그 바람을 타고 불티가 사방으로 날아다니는데 정말 아찔했습니다.

동이 트면서 산림청과 소방 헬기가 다시 투입되자 조금씩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바람이 계속 잦아들면, 잔불 정리 수순에 들어갈 듯합니다. 돌아보면 취임식 바로 다음날 찾아갔던 재난 현장이 가뭄에 바닥이 쩍쩍 갈라진 충북 진천의 저수지였습니다. 그러더니 이임식이 예정된 오늘도 나무들이 타는 연기와 냄새로 매캐한 현장입니다.

여러분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저도 큽니다. 하지만 현장을 지키는 것이 장관의 본분이기에 이임식을 취소키로 결심하였습니다. 이임식 준비에 실무진들이 많은 공을 쏟았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끝까지 수고를 다 해주신 분들께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2017년 6월부터 오늘까지, 1년 10개월 동안 하루하루가 오늘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제가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밥 한 끼 같이 못한 분도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이제 헤어져야 합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두 제게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유능하고 성실한 동료였습니다.

장관으로 부임할 때 걱정이 많았습니다. 내내 정치인의 길만 걸어오던 제가 공무원들과 함께 행정 집행자로서 소임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지 긴장이 되었습니다. 바깥에서 지적하고 비판할 줄만 알았지, 안에서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하는 이 자리는 마냥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공직자로서의 '신념', 자기 업무에 대한 '프로 정신', 공무원 중의 공무원이라는 '자부심'까지 갖춘 이들이 행정안전부 간부와 직원 여러분이었습니다. 한여름 뜨거운 모래밭에서 잃어버린 바늘 하나를 찾듯이 묵묵히 그러나 꼼꼼하게 책임을 다하는 여러분의 일하는 자세에 저는 감동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험한 파도를 헤치고 대양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원 팀'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믿고, 여러분은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포항 지진 때 수능 연기를 결정했습니다. 제천과 밀양 화재에 기민하게 대처했습니다. 30년 만의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을 만들었습니다. 지방자치 시행 후 최대 규모의 재정분권을 이루어냈습니다. 취임 첫 날부터 오늘까지 경찰은 제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습니다. 젊은 날, 경찰을 피해 도망 다녔던 장관입니다. 거리에서 돌도 좀 던졌습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 장관으로 하여금 '치안에 관한 사무'를 잘 관장하도록 여러분은 성심을 다해 주셨습니다.

제복을 입은 공무원답게 여러분은 국민 앞에서는 친절했고, 불의 앞에서는 당당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경찰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경찰은 창설 이래 가장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도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입니다.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더 잘 보장할 것이냐에 목적이 있습니다. 결국 국민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 반드시 수사권이 조정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경찰을 믿습니다. 경찰이 수사권이란 힘을 정의롭게 사용하고, 민생현장에서 국민에게 힘이 되는 민주경찰, 인권경찰로 한 단계 도약해주길 기대합니다.

소방도 정(情)이 들대로 들었습니다. 강릉, 제천, 밀양, 익산을 비롯해 숱한 현장에서 저는 소방관의 땀과 눈물을 지켜보았습니다.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큰 과제도 한 몸이 되어 움직였습니다. 소방관은 모든 재난 현장을 지키는 수호신이었습니다. 오렌지색 기동복을 볼 때마다 저는 든든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버텼을까 싶습니다. 전국의 5만 소방관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이 수고해주신 덕분입니다. 지난 22개월간 우리가 함께 이뤄 낸 일들을 돌아보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물론 부임하면서 국민께 다짐했던 일들 중에 다 이루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계획의 방향이 달라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못 다한 과제는 여러분이 훌륭한 인품과 역량을 갖추신 새 장관님과 함께 잘 해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재난이나 사고가 아예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리 예방하고, 조기에 수습해서 희생자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전한 나라'입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고, 피해를 입은 분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재난과 사고가 최대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입니다. 그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안전정책실이 앞장서 재난의 대비-대응-복구만이 아니라, 예방까지도 고민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의 양상이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해집니다. 여러분만큼 재난안전 업무에 정통한 전문가는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졌던 장관으로서 지난 2년간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안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안보나 치안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 생활 분야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도 그에 맞춰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행정안전부는 안전이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핵심 부처가 되었습니다. 특히 재난 대응의 최전선에 서있는 재난관리실과 재난협력실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제가 처음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제가 지역주의에 맞서 작은 몸부림이나마 쳤던 정치인이라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단언컨대 지역주의는 전국이 골고루 발전하는 나라가 되면 저절로 소멸될 수 있습니다. 우리 지방자치분권실과 지방재정경제실이 쌍두마차가 되어 지방 분권과 균형 발전을 밀어붙여 주었습니다. 정부혁신조직실은 마음 약한 이 장관이 각 부처 장관으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받아오는 조직 증원 요구를 한 치의 여지도 주지 않고 가차 없이 잘라주셨습니다. 그거 다 받아주었으면 지금쯤 200만 공무원 시대를 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철벽 수비수의 역할을 계속 해주셔야 진짜 민생에 필요한 현장 공무원들을 더 뽑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전자정부국의 업무 영역이 무한하다는 걸 알았다면, 대한민국의 4차 산업혁명은 벌써 세계시장을 휩쓸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ICT 인프라와 축적된 공공 데이터는 세계가 부러워합니다.그에 기반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잘 해서, 데이터 경제의 세계적 선두주자로 대한민국을 이끌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언급하지 않은 부서를 포함해 소속기관, 산하기관, 유관단체를 저는 또한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수고하는 여러분께 제가 특별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야말로 특별한 대접을 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행정안전부가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우주선이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하는' 정부 부처입니다. 어느 부처에도 속하지 않은 업무는 죄다 행안부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그런 일들은 크게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니면 누구도 하지 않거나, 해내기 쉽지 않은 일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야말로 나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애국자이십니다.

행정안전부 가족 여러분,

이제 저는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내려놓고 국회로 돌아갑니다. 국회로 복귀하면 장관으로서 미처 매듭짓지 못한 과제들을 마저 챙길 생각입니다. 행안부의 미결 과제들을 늘 머릿속에 담아 두겠습니다. 행정안전부를 편들 일이 있으면, 아주 대놓고 편을 들겠습니다. 특히 기획조정실은 국회 814호에 행안부 여의도 분실이 있다고 생각하고 수시로 들러 제가 할 일을 하명해주기 바랍니다. 그 대신 여러분은 국민의 편을 들어주십시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행정, 국민을 안전하게 모시는 행정,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행정을 펼쳐주십시오.

여전히 국회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과 호통만으로 정치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정치는 정부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합니다. 동시에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정부를 이끌어야 합니다. 정치를 고려하지 않는 행정은 독단입니다. 행정을 염두에 두지 않는 정치는 무능합니다. 그것이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제가 깨달은 진리입니다. 국회로 돌아가면 그런 정치를 하겠습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행정안전부 가족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했던 시간은 제 인생에 가장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룩한 모든 것들에 대한 보람과 긍지도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여러분을 사랑하는 제 마음을 제대로 말씀드렸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마무리하는 지금에서야 여러분께 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행정안전부 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동안 제게 주신 도움과 사랑,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12시면 저의 임기는 이제 끝이 납니다. 저녁에 신임 장관님이 도착하시면 상황을 인수인계 해드리려 합니다. 특히 이재민들이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우리 행정안전부가 잘 보살펴 주실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도 퇴근할까 합니다. 어제부터 못 잔 잠을 좀 자야겠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늘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부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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