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소설가·뮤지션·열혈 라이더, 여러 빛깔 향기품은 ‘들꽃박사님’
기자·소설가·뮤지션·열혈 라이더, 여러 빛깔 향기품은 ‘들꽃박사님’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4.07 2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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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붓 '도시는 내 아름다운 정원' 집필 정진영 작가 인터뷰
가장 사랑하는 꽃은 달맞이꽃…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기품 있는 향기 자랑
당근·양파·부추도 꽃피워…‘무한한 슬픔’ 꽃말 지닌 부추는 꽃피면 농부에게 퇴박
겨울이 채 가기 전에 매화를 만나러 어디론가 떠나는 일은 매년 매우 중요한 일
소설 ‘침묵주의보’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 문학도서 선정·보급사업에 선정
음악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차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
자전거로 4대강 종주를 마쳐…동해안·제주도환상자전거길 종주만 남겨둬
기자이자 작가이고 뮤지션이자 꽃 전도사인 정진영. 미디어붓
기자이자 작가이고 뮤지션이자 꽃 전도사인 정진영. 미디어붓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꽃은 어디에나 피어있다. 사방이 꽃밭이다. 군자가 꽃을 보고, 범인(凡人)이 꽃에 근접하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자하는 진정성에 있다. 일상은 꽃에서 시작해 생애를 아우르며 씨앗을 남긴다. 육신은 사라져도 정신을 보존하려는 가치다. 인간(人間) 정진영은 여러 빛깔의 향기를 품은 ‘꽃’이다. 기자이자 작가이고, 뮤지션인 동시에 바이크 라이딩 열정가다. 여기에 알아주는 식도락가이고, 꽃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는 다재다능, 박학다식, 팔방미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맑은 스피릿(spirit)으로 꽃처럼 살고, 꽃처럼 웃을 뿐이라는 주석을 달수밖에 없다. 글로 말을 읽고, 꽃으로 음감을 읽는 그의 여정을 조용히 목도하는 것은 가히 행운이다.

-기자이면서도 들꽃 전도사(꽃박사)다. 꽃 관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3년 초봄에 우연히 만난 작은 들꽃 때문이다. 당시 나는 처음으로 ‘똑딱이’(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마련했는데, 무엇이든 렌즈에 담고 싶어 바깥을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땅을 보며 걷다가 겨우내 삭은 낙엽을 뚫고 올라온 작은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익숙하지 않은 접사로 꽃을 촬영한 뒤 가까운 서점에서 식물도감을 뒤져보니 구슬봉이라는 꽃이었다. 다음 날 구슬봉이를 만난 장소로 다시 찾아가보니 냉이, 꽃다지, 봄맞이꽃, 큰개불알풀 등 어제 보지 못한 많은 들꽃들이 새롭게 보였다. 그게 들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본격적인 관심은 당시 내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고 있던 대전 대덕구 송촌동 정수사업소에서 시작됐다. 정수사업소는 업무 특성상 초지가 많은데, 농약을 뿌릴 수 없다. 그러다보니 정말 다양한 들꽃들을 매 계절마다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그곳에서 들꽃에 관한 많은 지식을 쌓았다."

대전 대덕구 송촌동 정수사업소에서 촬영한 달맞이꽃
대전 대덕구 송촌동 정수사업소에서 촬영한 달맞이꽃

-가장 좋아하는 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꽃을 하나만 꼽으라면 여름에 피는 달맞이꽃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맞이꽃은 누구도 바라봐주지 않는 밤에 꽃을 피운다. 한낮에 꽃잎을 접은 달맞이꽃의 모습은 그저 키가 큰 잡초일 뿐이다. 그 때문에 달맞이꽃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향을 갖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달맞이꽃의 또 다른 이름은 ‘밤에 오는 향기’란 뜻을 가진 ‘야래향(夜來香)’이다. 달맞이꽃은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하면서도 매우 기품 있는 향기를 자랑한다. 곱고 노란 꽃잎과 그 어떤 꽃들에도 지지 않는 향기는 달맞이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처연하게 만든다. 벌들이 모두 잠든 밤에 달맞이꽃을 찾아오는 곤충은 나방과 파리 등 세상으로부터 천대받는 녀석들뿐이다. 사실 벌은 식물의 수분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절반가량이다. 나머지는 우리가 흔히 해충이라고 부르는 곤충들의 몫이다.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는 달맞이꽃에게서 말 못할 사연을 감춘 채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여인의 슬픔을, 나방과 파리에게서 가진 것 하나 없어 모진 삶을 살아도 그 여인만을 바라보는 남자의 순정을 상상했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특이한 꽃말은 아니지만, 이보다 적절한 꽃말이 있을까 싶다."

-꽃 취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취재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길을 걷는 게 취재라면 취재다. 길을 걷다가 꽃이 보이면 카메라를 꺼내든다. 대단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진 않는다. 내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는 고급형 ‘똑닥이’인 니콘 P340인데 접사 기능에 특화된 기종이다.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와 접사렌즈도 갖고 있지만, 저 ‘똑딱이’만큼 빠르고 쉽게 접사를 담지 못하더라. 예전에는 가방에 미러리스와 ‘똑딱이’를 모두 들고 다녔지만, 요즘에는 달랑 ‘똑딱이’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나는 심산유곡에 피는 희귀한 꽃을 찾아다니진 않는다.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꽃들에 애정을 갖고 있다. 내 눈에 도시는 여느 정원 못지않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연재물 제목이 ‘도시는 내 아름다운 정원’인 이유다."

제주시 노형동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촬영한 수국
제주시 노형동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촬영한 수국

-독특한 꽃이나 특이한 꽃말을 가지고 있는 꽃을 소개한다면.

독특한 꽃이라면 수국이 먼저 떠오른다. 수국의 꽃 색깔은 무엇일까. 푸른색? 붉은색? 흰색? 모두 맞다. 수국은 독특하게도 산성 토양에서 푸른색, 염기성 토양에서 붉은색, 중성토양에서 흰색 꽃을 피운다. 흰 꽃을 피운 수국의 뿌리 주변에 산성인 백반을 뿌려두면 꽃이 점점 푸르게 변한다. 반대로 염기성인 석고를 뿌리 주변에 뿌려두면 꽃이 점점 붉게 물든다. 색에 따라 꽃말도 다채롭다. 푸른 꽃은 ‘냉정’ ‘무정’ ‘거만’, 붉은 꽃은 ‘소녀의 꿈’, 흰 꽃은 ‘변덕’ ‘변심’이다.

대구 강정고령보 부근 텃밭에서 촬영한 부추꽃
대구 강정고령보 부근 텃밭에서 촬영한 부추꽃

특이한 꽃말로는 부추꽃의 꽃말인 ‘무한한 슬픔’이 떠오른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현상은 이상한 일이 아닌데, 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근, 양파, 부추 등도 모두 꽃을 피운다. 그중에서도 부추는 상당히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추꽃을 잘 보지 못하는 이유는 꽃대가 올라오면 잎이 억세져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꽃이 핀 부추는 농부의 입장에선 베어내야 할 골칫거리다. 온몸을 내주고도 아름다운 꽃을 보여줄 일이 드문 부추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꽃말이다. 저 흔하디흔한 부추도 실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존재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꽃말이 아닌가 싶다."

-매화를 보기 위한 에피소드.

"매화나무는 아담한 편이다. 나무만 보면 솔직히 별 볼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화가 봄꽃 중에서도 으뜸 취급을 받는 이유는 압도적인 향기 때문이다. 매화의 향기는 후각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해 그 어떤 향수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품이 있다.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먼저 매화를 만나러 어디론가 떠나는 일은 매년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8년 전 2월 말 다른 지역에선 눈이 펑펑 내리는 와중에 활짝 꽃을 피웠던 거제 구조라초등학교 교정 안 나이든 매화나무 세 그루, 2년 전 2월 초 내가 홀로 소설을 쓰기 위해 칩거했던 섬진강에서 만난 홍매화, 지난 1월 초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우연히 만난 꽃을 피운 매화 등.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게 향기와 함께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이제 주변에서 매화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아쉽지만 내년을 또 기다릴 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 문학도서 선정·보급사업인 ‘문학나눔’에 선정된 ‘침묵주의보’에 대해 소개해 달라.

정진영 작가의 '침묵주의보'
정진영 작가의 '침묵주의보'

"‘침묵주의보’는 내가 기자로 일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언론이 어떻게 왜곡되고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지 조명한 장편소설이다. 나는 2017년 1월 다니던 언론사에서 퇴사한 뒤 섬진강의 한 절에 칩거해 소설을 집필했다. 당시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에 몹시 화가 나 있었고, 퇴사는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소설은 일간지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언론사의 생리와 이해관계를 풀어낸 작품이다. 이를 통해 우리 일상에 만연한 권력형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는 한편, 자의와 다르게 동조자 혹은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에 주목했다. 정의롭지 못한 윗선의 비리와 위선에 엮이게 된 힘없는 을이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은 물론, 현실에서 언론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 그리고 정직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루어나가기 위한 언론인의 역할을 묘사했다. 아마 국내에서 언론을 다룬 소설 중에선 가장 현실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생존권이 달린 부도덕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밥벌이’도 지키고, 스스로의 ‘존엄’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허접한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 문학도서 선정·보급사업인 ‘문학나눔’에 선정됐다. 전작 ‘도화촌기행’으로 2011년 제3회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한 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후속작을 내는데 게으름을 피우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더 이상 나를 소설가로 부르기 민망한 상황이었는데, ‘침묵주의보’를 출간한 덕분에 소설가라고 여기저기 다시 떠들고 다니고 있다."

-한국대중음악명반 관련해서 이야기 해달라.

한국대중음악명반100
한국대중음악명반100

"음악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이다. 어린 시절엔 뮤지션을 꿈꿨고, 몇 년 전에는 소싯적에 만든 곡들을 모아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또 문화부에서 대중음악 담당 기자를 하며 여기저기 글을 썼던 인연으로 전문가도 아닌데 전문가 취급을 받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1998년과 2007년에 대중음악평론가,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서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개를 선정한 일이 있다. 2차 선정 이후 10년이 넘게 흐른 터라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선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 선정 작업이 진행됐고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단행본으로 엮여 ‘한국대중음악명반100’이란 이름으로 출간됐다. 나는 100대 명반을 선정하는 위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선정된 100장의 앨범 중 4장의 리뷰를 작성했다. 현 시점에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중요한 앨범들이 무엇인지 조망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전국 자전거 여행에 대해서....

"나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몸을 일부러 혹사하는 이상한 성격을 갖고 있다. 지난 2016년에 나는 다니던 언론사에 사표를 던졌는데, 주변의 만류로 1달간 휴가를 얻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집에서 뒹굴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됐다. 생각이 들자마자 마트에서 미니벨로를 구입한 뒤 바로 여행을 떠났다.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더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버티고 버틴 끝에 1주일 만에 국토종주를 완료할 수 있었다. 덕분에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 힘든 여행이었지만, 몸으로 풍경을 느끼는 일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국토종주를 하며 한강과 낙동강을 종주한 나는 이후 금강자전거길, 영산강자전거길을 종주해 4대강 종주를 마쳤다. 그 다음엔 섬진강자전거길, 오천자전거길, 북한강자전거길 종주를 차례차례 마치고 이제 동해안자전거길과 제주도환상자전거길 종주만 남겨두고 있다. 올해 안에 나머지 자전거길 종주를 마쳐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자전거 여행은 자동차로 떠나는 여행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게 많은 여행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2016년 11월 16일 자전거국토종주를 완료한 뒤 기념 촬영.
2016년 11월 16일 자전거국토종주를 완료한 뒤 기념 촬영.

▲이미 알려져있지만 정진영 작가의 아내는 박준면 배우다. 그녀 또한 팔방미인이다. 가수, 탤런트, 연극배우, 래퍼, 싱어송라이터···. 그녀가 가지 않는 길은 없다. TV, 영화, 연극무대를 넘나들며 잠재된 모든 끼를 폭발시킨다. 두 사람은 서울에서 세종으로, 다시 세종에서 김포로 둥지를 옮겨 잉꼬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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