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꽃 피우는 행복 전도사
이름에 꽃 피우는 행복 전도사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8.12.13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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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Feel]풀뿌리그림 화가 박석신
아프고 지친 사람들에게 이름 그려주며 위로
박석신 화가.사진=미디어붓DB
박석신 화가.사진=미디어붓DB

‘화첩기행’으로 널리 알려진 박석신 화백(목원대 교수)은 붓 대신 꽃, 풀, 흙, 숯 등 자연재료로 그림을 그린다. 길가에 있는 풀뿌리를 뽑거나 꽃을 묶어 붓으로 사용한다. 붓과 먹은 20년 이상 연마해야 소구가 되지만 꽃과 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구가 된다. 기존의 표현방식인 모필을 벗어나 초근(풀뿌리)으로 사물을 크로키 하는 것이니 유쾌한 반전이다. 그는 항상 밝고 따뜻하다.

-‘화첩기행(TJB)’이란 화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화첩기행은 나에게 여행이라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화가 개인을 알리는 의미 있는 홍보 매체이기도 하다. 실제로 화첩기행을 하면서 평상시 가보지 못했던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고 또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고,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주 멋진 시간과 경험이 됐다. 화가의 시간을 기록한다는 의미도 있다.”

촬영은 1시간 분량을 찍기 위해 2박3일에서 3박4일 정도 걸린다. 몇 명의 화가가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정도 촬영을 간다. 최근에는 강의 일정이 너무 바빠서 자주 못 나가고 있다.

-갤러리 ‘꼬씨 꼬씨’를 소개해달라.

“대전 대흥동 꼬씨 꼬씨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그동안 운영해오던 문화 공간을 이전하면서 새로 꾸민 갤러리 겸 카페다. 이곳은 80년 된 오래된 건물이고 골목 안에 방치돼있던 곳을 친구들과 리모델링한 것이다. 어찌 보면 작은 도시재생의 개념을 개인이 실천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엔 작은 마당이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마당에서 작은 여유를 찾고 차(茶) 한 잔 마시면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최근에 ‘엄마의 그림전’이라는 기획 전시가 열렸다. 엄마로 살다가 화가로 살기로 마음먹은 엄마들이 함께 전시를 했다. 전시를 통에 얻어진 수익금은 한 아이의 치료비로 기부되기도 하고 유기견 보호센터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기도 한다. 앞으로 꼬씨 꼬씨는 여러 가지 전시 기획을 통에 시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가꿔가는 공유공간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꿈꾸던 마당이 생겼고, 그곳에서 사람, 자연, 사랑을 그린다

그는 마당이 있는 집을 꿈꿨다. 텅 비어있어서 바람이 꽃나무를 스쳐 지나가고, 고양이와 새가 몰래 왔다가는 곳. 싸리비 마당 쓴 자리에 손님의 발자국이 나고, 어느 날엔 작은 축제가 열리는 곳. 또 어느 날엔 땅을 치며 통곡하고, 어느 날엔 떠나는 손님을 배웅하는 그런 마당이 있는 집을 원했다. 마당에는 시간과 공간과 사람의 이야기가 있고, 사람과 공간사이에는 텅 빈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박석신 화가 작업 모습.
박석신 화가 작업 모습.

-이름 꽃 그리는 화가다. 지금까지 몇 명의 이름을 그렸나.

“지금까지 수만 명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제는 숫자의 의미를 주지 않기로 했다. 가슴에 그려주는 마음 편지라는 행사도 사람들의 이름에 담겨 있는 애틋한 사연들을 그림과 글씨와 시로 표현한다. 어찌 보면 우리 그림에 옛 형식 문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름 꽃을 그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내 가슴에 다시 새기면서 내 스스로 치유되고 힐링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박 화가는 10년 넘게 종합병원 암 병동과 소아병동, 사회적 약자가 있는 기관에 찾아가 작업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도 봉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화가로서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고 화가가 작업실이 아닌 삶의 현장과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장소로 이동에서 작업하는, 또 다른 작업이라고 얘기했다.

-재능기부인가.

“사실 재능 기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많은 공공기관 또는 여러 단체에서 예술가들에게 재능을 기부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게 되는데 기부라는 것은 내가 우러나와서 하는 행위에 근간을 두어야 한다. 내가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위로와 희망, 용기를 담아서 그려주고 선물해주는 것은 재능기부가 아니고 내 작업의 한 방향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나 역시 아파 보았고, 상처를 입어보았으니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안다. 그 마음을 치유하고 나 또한 치유하고 있다.”

-화업(畵業)은 핏줄 영향인가.

“명필이었던 조부, 부친의 영향도 있지만 칭찬의 힘이 제일 컸다. 초등학교 때 공책 앞뒤로 그림낙서를 하곤 했는데 그걸 본 담임선생님이 꾸짖기는커녕 스케치북을 사주면서 격려해줬다. 낙서 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진짜 잘 그렸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았다.(하하) 덕분에 매헌문화제 사생대회서 대상도 받았다. 지금도 최고의 가르침은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유년시절 얘기를 해 달라.

“예산이 고향인데 주변에 고암(이응노), 추사(김정희), 만해(한용운), 백야(김좌진), 매헌(윤봉길)의 생가가 있다. 자연스럽게 문화예술 DNA를 접하며 자랐던 것 같다. 고개 하나만 넘으면 이들이 살아왔던 길과 맞닿았다. 용봉산 근처에서 초등학교까지 5㎞를 걸어 다녔는데 개근상을 타본 기억이 없다. 등교하면서 개구리, 꽃, 풀들을 보다가 땡땡이치는 날이 많았다.(웃음) 시골고향은 아직도 나에게 무한한 감성을 준다.”

-풀뿌리 그림 전도사다.

“풀뿌리를 붓을 만들어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스케치 여행 도중 정확히 말하면 화첩기행 도중 붓을 안 가져간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붓대 신 풀뿌리를 묶어 그리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실수였지만 순간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방법이라는 스토리를 담아서 지금도 풀뿌리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안에는 하찮은 잡초가 귀한 스토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의미와 풀뿌리로 그림을 그리면 쉽게 사람들이 우리 그림에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풀뿌리로 그림을 그리면 훨씬 더 변화 있는 선과 점을 얻을 수 있고 즉흥성이 있어서 보다 재미있는 그림들이 그려진다.”

박석신 화가의 꽃시.
박석신 화가의 꽃시.

-그림에다 즉석 명구(名句)를 쓴다. 어떻게 낙서 같은 그림을 보고 시 같은 언어를 조합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길, 자연, 감성이다. 첫사랑도 그 길에 있었고 땡땡이치던 추억도 그 길에 있었다. 비 오면 냇물이 넘쳐 종아리를 걷고 건너야했던 삶도 그 길에 있었다. 명구는 영감, 느낌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내 얘기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단지 정리해주는 것이다. 말하는 이의 생각이 80이라면 내가 정리해주는 것은 20정도다. 서로가 소통하는 것이다. 교감이다. 그림에 즉석으로 명구나 시를 쓴다는 것은 우리 서화가 함께 들어있는 형식인 문인화, 시(詩), 서(書)라는 옛 그림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빌려온 거다.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짧은 시로 그 의미를 담아주는데 사실 시라기보다는 한 사람이 내게 들려준 그 삶의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짧게 정리해서 쓰는 글이다.”

그는 대학 다닐 때부터 잔디밭에 앉아 기타를 치며 막걸리를 즐겼다. 그리고 친구와 개똥철학을 논하기를 좋아했다. 본격적으로 화가에 길로 접어든 건 생활고 때문에 잠깐 전원 카페에서 기타 치며 노래한 경험 때문이었다. 화가에겐 특별한 추억이고 아픈 기억이기도 했다. 그 경험으로 지금도 강의 중에 가수 정진채 씨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에게 노래와 그림과 시와 술, 기타는 평생의 친구 같은 존재다.

가수 정진채(왼쪽) 씨와 박석신 화가. 사진=미디어붓DB
가수 정진채(왼쪽) 씨와 박석신 화가. 사진=미디어붓DB

-정진채 씨와는 어떤가.

“호흡이 척척 맞는다. 그와 여행하면서, 공연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닌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알려주는 일이 즐겁다. 이제 예술가들도 떵떵거리며 살아야하지 않나.(웃음). 우린 묵향처럼 스며들고 번지는 썩 괜찮은 벗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뭐든지 혼자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동조,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성공한다. 예술인들도 이제 밖으로 나와야한다. 그래야 관객과 만날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다. 더불어 예술도 산업이 됐으면 좋겠다. 문화야말로 점차적으로 자생하는 것이다. 수익을 창출하고 그것을 재투자해야 저변확대가 이뤄진다. 자연에서 소재를 찾듯 번짐과 스밈의 매력을 대중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 바램이다.”

그의 손길이 닿는 여백은 꽃이 되고 새가 되고 산이 된다. 눈물이 되고 감동이 된다. 감동은 동감이다. 그의 서화엔 꽃이 피어있다. 사물의 표정을 읽고 의인화하니 소나무에도 꽃이 핀다. 그는 함께 한곳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향기가 같다고 했다. 또 내일 피어날 향기는 오늘 핀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빈산에 바람이 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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