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읽는 어르신의 매서운 눈, 어른이 사라진 시대 ‘바른 소리’
세상을 읽는 어르신의 매서운 눈, 어른이 사라진 시대 ‘바른 소리’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4.14 22:0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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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만평가 노병삼 선생
일흔 가까워서야 시작한 시사만평, 지인들에게 SNS로 소통
세상 부조리 파헤치며 비평·풍자…“부끄럼 없는 삶 사는 게 어른”
청주시 운천동에 사는 노병삼 선생은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일흔 나이에 시사만평을 그리며 세상과 시대에 대한 비평과 풍자를 하고 있다. 미디어붓
청주시 운천동에 사는 노병삼 선생은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일흔 나이에 시사만평을 그리며 세상과 시대에 대한 비평과 풍자를 하고 있다. 미디어붓

만평(漫評)은 세상을 읽는 눈이자, 세상을 보는 칼이다. 때문에 시사만평을 그리는 화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해 직관을 가져야하고, 그것을 시사적 해법으로 터치할 줄 알아야한다. 카툰의 주제가 인간의 희로애락이라면 만평은 인간의 행위를 비평하고 풍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만평가에게는 동시대의 사회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 또한 어느 한쪽만을 대변하는 편협한 시각을 가져서도 안 된다. 결국 시사 만평가의 최고 덕목은 곧은 ‘결’(결기·성품의 바탕이나 상태)이다.

늦은 나이에 만평을 그리고, 지인들에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서비스를 하는 어르신이 있다. 청주시 운천동에 사는 노병삼 선생(71·이하 노선생)은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고 만평을 사사받은 일도 없다. 하지만 그는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어른다운’ 풍자를 하며 사회를 비평한다. 물론 화풍이 유려하거나 터치가 프로페셔널하지도 않다. 그래도 한 컷짜리 만평 속에는 당대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모든 허(虛)와 실(實), 그리고 부조리를 파헤치는 공적인 저널리즘이 모두 담겨있다.

“누구나 말은 현란하게 할 수는 있지만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일순 당황하게 됩니다. 특히 정치얘기가 나오면 유머, 과장, 왜곡된 시각으로 여러 갈래의 주장들만 쏟아져 나오죠. 저는 기본적으로 피지배 계층인 시민계급이 정치권력에 대해 한마디쯤은 제대로 말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만평은 항상 고뇌의 산물이죠. 일단 만평이 완성되면 공감대 형성을 위해 지인들에게 보여줍니다. 물론 대단한 피드백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안에 대해 서로 고민하고 성찰해보고 싶은 겁니다.”

그는 ‘노삿갓’이라는 타이틀로 시사만평을 그린다. 일찍이 ‘김삿갓’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거기서 이름을 따왔다. 김삿갓에게 매료된 것은 그의 곧은 처세와 애민정신 때문이다. 김삿갓은 단장을 짚고 전국을 돌며 한(恨)과 울분을 시로 달랜다. 세속의 비리와 타도돼야할 문제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교정시키는가하면 백성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고 대변하며 살아간다. 노선생은 김삿갓의 정신, 그 비판적 시각이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지요. 하지만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형편 때문이었죠. 누구나 다 어렵게 살 때였지만 저 또한 긍휼이 아닌, 도움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늘 관심은 많았어요. 혼자서 그려보고 찢고, 다시 그려보고 찢고….”

노선생은 그날그날 시사적인 뉴스를 눈여겨봤다가 마음을 담아 일순간에 그린다. 주제를 특별히 정해놓지는 않지만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구상은 하지 않는다.

“시사문제는 쉼 없이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비평과 호평은 늘 동반하는 습관이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울분과 환호가 엇갈리며 부침(浮沈)이 심했습니다. 주변에서 박학과 다식을 거론하며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게 펜을 놓지 않게 한 힘이었죠.”

노병삼 선생이 날마다 그리고 있는 시사만평.
노병삼 선생이 날마다 그리고 있는 시사만평.

노선생은 이 시대 진정한 ‘어른’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어른이란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은 사람이 무작정 큰소리를 낸다고 어른이 됐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어른이란 몸소 실행하고 남들에게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연륜입니다. 양심이죠. 저는 평소 맹자삼락을 되짚어보며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맹자의 인생삼락은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입니다. 부모가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보고 사람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음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는 것이죠. 저는 배우면서 깨닫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노선생은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음씨의 부재(不在)’라고 진단했다. 국민 모두가 경제규모에 걸맞게 좀 더 너그러운 마음씨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사는 것’에 얽매이다보니 어느 순간 ‘마음씨’를 잃었다고 말했다. 먹고사는 것에 집착하고 함몰되면서 부모와 형제, 친척과 이웃들이 서로 외면하고 냉대하고 적대적 관계로 변이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돌아보는 마음, 성찰(省察)이 필요하다고 충언했다.

노선생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다섯 명의 시사만평가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는 김성환, 안의섭 화백을 좋아했고, 성인이 돼서는 고우영, 이두호, 김상택 화백을 경외했다.

“김성환 화백의 만화는 고바우에서 시작해 고바우로 끝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죠. 경복중 5학년 시절,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라는 만화를 연재해 가족의 생활비를 마련했던 입지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6·25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해 서울 정릉 다락방에 숨어 지내면서 200여 캐릭터를 그렸던 것이 고바우영감이었어요.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도출된 수많은 독재정권의 비행을 드러내며 억눌려 지내는 서민들에게 대리만족의 통쾌감을 선사했죠.”

그는 경향, 동아, 조선일보에 오랜 기간 시사만화 ‘두꺼비’를 연재한 안의섭 화백을 두고 소시민적 해학과 풍자가 일품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대담한 필치의 그림과 독특한 재해석, 연출로 명성을 쌓은 만화가 겸 영화감독 고우영, 한국 만화계의 국보급 작가 이두호, 가는 펜을 이용해 극화형식의 독특한 그림체를 구사한 김상택 화백을 칭송했다. 당시 김성환, 안의섭 화백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 치하에서 정치적 상황을 빗대어 풍자하다가 숱한 탄압을 받았다.

노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책을 소일거리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양 영역 없이 시간을 내 다독(多讀)한다. 책읽기는 결국 만평을 그리는데도 자양분이 되고 있다. 시사는 시대의 분야를 편식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과 소신 때문이다. 일종의 잡식, 알아야 치우침 없이 그려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행복론, 국부론 등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좋았을 뿐이죠.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삼국지를 교양소설로 지정해 독후감 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분량이 제법 되지만 우리 젊은이들도 삼국지를 읽고 인간의 심리나 인간의 도리, 정의감 등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의 화목입니다. 정숙한 집에서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고향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이다. 만평의 숨결은 고향의 색깔과 정서에서도 묻어난다.

“고향은 삶을 목도하는 나침반 같은 곳입니다. 향수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삶의 성지 같아서 늘 몸가짐을 바로잡아줍니다. 객지를 전전하며 살아오는 동안 고향을 욕 먹이는 일을 할까봐 조심하면서 살았습니다. 철없던 시절, 어려운 집안생각을 안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고 서울로 떠나기도 했지요.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 생활을 하는 가족에게 평생 질 수밖에 없는 빚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고서야 죄스런 마음을 가졌으니 이 또한 후회스러운 대목입니다.”

문화재 발굴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병삼 선생.
문화재 발굴작업 하는 노병삼 선생.

노선생은 현재 문화재 발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노임은 적지만 고시대 유물을 발굴하는 작업은 사명감도 생기고 긍지도 북돋운다.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제가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되도록 내려놓는다는데 있습니다. 절제된 생활습관이죠. 그래서 과식·과음을 하지 않습니다. 더 먹고 싶을 때 수저와 술잔을 내려놓으려합니다. 결국 만평도 한 컷에 모든 것을 표현해야하기에 절제와 강단이 필요한 것이겠죠.”

노선생은 요즘 신문에서 만평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많은 공간을 할애하지 않으면서도 한 획, 한 획을 터치하며 세상을 일깨우는 죽비(竹篦) 같은 여백이 그립다는 것이다. 남에게 보이려고 사는 인생이 아닌, 자신에게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는 오늘도 만평을 그린다. 독자 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시대의 부조리와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나란히 걸어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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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2019-04-16 09:06:58
공감 만평 응원합니다.

재희 2019-04-15 10:39:39
노삿갓님의 만평과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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