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자직 때려치우고 시작된 형제의 난(亂)
2. 기자직 때려치우고 시작된 형제의 난(亂)
  • 미디어붓
  • 승인 2019.04.1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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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어느 날,

형제(兄弟)는 돌연 사표를 던졌다. 30년 가까이 기자(記者)로 살아온 명패를 스스로 던져버린 것이다. 형은 신문사 편집국장, 동생은 편집부국장의 감투를 쓰고 있었다. 직급으로 보면 편집국 최상위계층까지 올라간 상태였고, 정년이 간당간당한 것도 아니어서 주변의 충격파는 컸다고 한다. 상황을 잘 모르는 장삼이사들은 이를 두고 ‘형제의 난(亂)’이라고 불렀다.

형제는 세상의 탁류가 싫었다. 굴신과 반목, 전향과 변절, 협잡과 맹목의 감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능욕과 굴욕의 세상, 누군가는 능멸하고 누군가는 능욕 당했다. 이 졸렬한 집단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도 해봤으나, 세상은 상식의 선(線)에서 방향대로 가지 않았다. 키(key)를 잡은 사람도, 노를 젓는 사람도 바다의 본류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변곡점의 한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소란스럽다. 소음 속에서 야합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내밀함 속에서도 협잡이 이뤄진다. 이건 소음이 아니라 잡음이다. 소음은 단지 시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잡음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상처다. 본인도 모르게 횡행하는 이 난삽한 행위들은 결국 공동체를 와해시킨다. 모리배 당사자도 언젠가는 그 잡음에 의해 버림받고 내처질 것이다. 특히 공익과 사익의 경계가 불명확한 언론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점점 더 열패감 속에 빠져들고 있다. 갑(甲)도 아니면서 갑(甲)의 위치에서 군림하려 하고, 저널리즘을 포기했으면서도 저널리스트로 가장한다. 결국 독자와 대척하니, 일종의 길항 관계가 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자들 스스로 갑(甲) 행세를 했지만 정작 본인들의 삶은 을(乙)이라는 점이다. 경영진의 그치지 않는 탐욕, 그 욕망의 희생양이 되어 돈벌이에 나설 수밖에 없는 기자들은 펜 대신 전표(slip·傳票·영업)를 들어야 하는 구조다. 그러니 파키디오트(Fachidiot: 전문가 바보)가 될 수밖에…. 더구나 정작 사표를 써야 할 군상들은 사표를 쓰지 않고 맹독성 암투를 통해 비열한 삶을 연명하고 있다. 거짓말은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 앞뒤가 다 맞아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알고 있다. 무엇이 정의(正義)의 다랑귀를 뛰게 할지를 말이다.

우리는 맹목(盲目)을 버렸다. 맹목은 선택의 폭이 없다. 30년 가까이 한길만 걷고 한쪽만 보아온 인생이 너무나 바보 같아서, 스스로 도륙의 인연을 끊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도망을 선택했다. 그리고 채우기 위해 비웠다.

별안간의 사직(辭職)은 삶의 물집 같은 것이다. 만지면 덧나고, 그대로 놔두면 진물이 나는, 그래서 견뎌온 세월이 한숨과 정염(井鹽)으로 난도질된다. 다랍고 인색한 세상의 반대편에 서서 조용히 세월의 긍휼(矜恤)을 읽는다. “인생2막(幕)은 줄다리기가 아니라 속도 없는 달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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