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맛집 순례가 아닌 마을 탐방에 나서다
3. 맛집 순례가 아닌 마을 탐방에 나서다
  • 미디어붓
  • 승인 2019.04.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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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여행을 떠나기로 도원결의했다. 선술집에서 선문답(禪問答)한 끝에 이심전심으로 결정됐다. ‘엉겁결’이라는 말은 이런 때 나오는 것이다. 넋두리 같은 허언은 청사진으로 구체화됐고, 그 밑그림은 다시 명확한 실체화로 이어졌다. 일사천리였다. 기자로 살아온 숙명적 습관 때문이었을까. 그저 그런 여행이 아니라 여행의 목적, 방향성이 필요했다. 무엇을 위해서 떠나는가. 왜 떠나는가. 떠나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런 일련의 질문이 필요했다. 결론은 한가로운 유람이 아니라 유랑이어야 하며, 꽃놀이 같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린 청춘의 전성기 때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인 동시에, 전혀 달라진 사람으로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작성한 여행계획 노트.
여행을 떠나기 전 작성한 여행계획 노트.

먼저 여행지는 해외가 아닌 국내로 가닥을 잡았다.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떠나는 트렌드에 반(反)하고 싶었다. 외국여행이 유행이 되는 건 뻐기려는 심리다. 미주, 유럽 어디어디에 가봤다고 너스레 떠는 게 마치 ‘목적’이 돼버렸다. 자국 영토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敬意)가 없다.

땅의 가치는 존재의 가치다. 이 땅을 숭배하지 않고는 그 어떤 우월적 여행도 거드름에 불과하다. 우린 되도록 국내 구석구석을 돌며 우리네 향토적 오감(五感)을 경험하고, 그 경험칙을 여러 사람과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었다.

더욱이 흔하디흔한 맛집 탐방, 내비게이션을 따라 순행하는 볼거리 위주의 여행 백서는 꿈도 꾸지 않았다. 백종원이 맛있다고 하면 지옥 끝이라도 달려가려는 ‘먹방(Mukbang․먹는 방송)’은 길들여진 양념 맛이다. 설탕과 파 기름으로 범벅을 해서 모든 식감을 마비시키는 그 단순한 레시피(recipe)는 본연의 맛이 아니다.

어느 서점을 가든 맛집과 볼거리, 즐길 거리에 관한 여행기(記)는 차고 넘친다. 대부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입맛만 다시는 툇방(退房) 신세다. 네이버에 동네 맛집을 검색하면 수십만, 수백만 가지의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여행지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그런 정보엔 탐욕과 탐욕을 채우는 요령들로만 그득하다.

우린 전국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1특별자치도, 8도, 75시, 82군, 69자치구를 되도록 세세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특히 자연마을(행정里)을 여정의 중심으로 삼았다. 통계청 KOSIS(국가통계포털) 기준으로 보면 전국에 4만 9455곳(2015년 기준)의 자연마을이 존재한다. 이 중 가장 많은 행정리를 갖고 있는 곳은 충남인데 무려 9264곳의 자연마을이 있다. 이 방대한 마을들을 모두 소화한다는 건 무리여서 다시 세부적으로 항목을 나눴다. 가령 특이한 지명을 가진 마을을 중점적으로 여행하자는 거였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도로 이정표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무조건 최단거리를 지향한다. 때문에 대한민국 곳곳에 숨어있는 독특한 지명(地名)들을 허투루 보고 지나친다. 전남 구례 광의면엔 방광리가 있고 전북 순창군 풍산면엔 대가리가 있다. 울주군 온양읍 발리, 경남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 경북 군위군 의흥면 파전리, 경남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경북 경주시 내남면 조지리, 충북 증평군 증평읍 연탄리,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고도리가 대표적인 이색 지명들이다.

이 같은 특이지명에 관한 취재는 2003년에도 했었는데 그때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었다. 대한민국 국토 종주의 시작과 끝은 바로 우리 땅, 우리 마을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러보고 다시 한 번 기억하고자 하는 정통성에 있다. 마을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 외에 폄훼하거나 희화화할 생각은 1%도 없었음을 밝힌다.

그냥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코믹 지명, 그냥 되뇌어봤을 뿐인데 상당히 위압적이고 으스스한 엽기 지명, 입으로 읊조리는 순간 홍조를 띨 수밖에 없는 에로 지명, 처음엔 웃었지만 한 번 더 불러봤을 때 슬퍼지는 ‘웃픈’ 지명. 그리고 많은 사연과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세월의 더께를 쓰고 있는 호기심 가득한 지명들. 우린 이런 마을들의 소소(小小)한 행간을 그들의 진정성과 정체성을 살려 소소(笑笑·웃음)하게 풀어보기로 했다. 마을의 가치는 애향심에 있다. 혹여 이 글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분들이 있다면 넓은 혜량으로 이해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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