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땅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닮았다
8. 땅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닮았다
  • 미디어붓
  • 승인 2019.05.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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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일몰 풍경. 미디어붓
시골 일몰 풍경. 미디어붓

들녘이 온통 빨주노초파남보 꽃 잔치다. 필 수 있는 모든 꽃들이 총천연색으로 색감을 입고 있다. 꽃숭어리도 활짝 어깨를 펴 꽃향기는 더 진하다. 철따라 꽃이 피건만 봄꽃의 웃는 표정이 유난히 더 크고 야무지다. 더욱이 길에서 만나는 작은 들꽃, 들풀은 주체할 수 없는 춘흥을 불러일으킨다. 사오월의 들녘, 바람의 맛이 매일 다르듯 작은 야생화의 소소한 얼굴들도 시시각각 얼굴을 바꾼다. 볕이 있는 다랑논 언덕에, 숲길과 마을길 사이 작은 농로에, 먼지 흩날리는 신작로 옆에 보일락 말락 조그맣게 둥지를 틀고 있다. 말갛고 여린 얼굴이 싱그럽다 못해 앙증맞다. 냉이꽃, 양지꽃, 개불알꽃, 광대나물꽃들은 바람이 풀의 현(絃)들을 뜯고 지나간 자리에 있다.

챙 넓은 모자를 쓴 활엽수와 제 몸의 중량을 최대한 줄여 뼈마디를 드러낸 침엽수가 볕의 정기를 한껏 빨아들인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공존하니 마을 정원은 사계절이다. 나무는 바람의 방향으로 휘어진다. 햇살도 정해진 동선(動線)으로 떨어지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 바람소리와 교감한다. 나무는 죽은 물고기처럼 납빛으로 번쩍인다. ‘세상은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하면 변할수록 같아진다’는 파피루스 구절을 되뇐다.

오늘날 ‘농촌’은 지난한 과거의 눈물이다. 귀농, 귀촌이라고 요란하지만, 좁은 들녘엔 허리가 반쯤 굽은 사람들만이 세월을 짊어지고 있다. 고령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마을의 허리가 굽었다. 봄볕을 받은 이랑(밭을 갈 때 볼록한 부분인 두둑과 오목한 부분인 고랑을 합친 말)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 오롯이 슬프다. 이제 고향, 전원, 여유, 어머니, 인심이라는 말은 가난, 농사, 불편, 적막함, 어둠, 빈집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된다.

늙음이 스며들어 있는 시골집, 아궁이와 굴뚝과 두레박과 그 낡음이 사람의 생애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상살이에서 구토하고 쓰러지고 아파하고 쓸쓸하게 느꼈던 모든 기록들이 기실은 우리가 꿈꾸고자 하는 시간들의 집적이다. 땅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닮고, 물은 물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닮는다. 온갖 정한에 몸을 떠는 한 필부의 내면은 순명이다. 삶에 대한 천착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시세(時勢)의 흐름을 읽는 몽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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