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마을들은 바다와 접한다. 시야에 부딪힘이 없다. 서쪽은 바다여서 평면이고 동쪽은 논밭이어서 평면이다. 곡선의 길과 직선의 바다가 만나 교유한다. 마치 낯선 여행자가 들르면 수박이라도 내오고 미숫가루물이라도 내줄 것 같은 친근함이다. 새참 같은 곳이다.
구례와 하동은 전남과 경남이라는 경계 외에 화개장터를 매개로 공존한다. 비스듬히 남쪽을 향해 터를 잡은 이곳은 천하제일의 명당이다. 마을을 감싸 품은 산은 신령스럽다. 삭풍을 막아주고 온풍을 기꺼이 잉태한다. 구름은 공작의 날개처럼 평행으로 열 지어 선을 그리며 푸른색 하늘로 넓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마법에 걸린 듯한 색깔이다. 부드러운 산등성이와 그 안부(鞍部), 그리고 더 앙증맞은 봉우리들이 겹친다.
동네들은 아늑하다. 꽃밭이다. 봄꽃들이 어린아이 댕기(도투락)처럼 정원을 이룬다.
들은 넓고 환하다. 풍경의 행간이 넓다. 집들은 하나의 섬이다. 멀찍이, 널찍이 퍼져있다. 집은 하나의 객체로써 존재한다. 피안(彼岸)이다. 마을사람들은 마음의 행간을 한껏 넓힌다. 풍경들은 태양, 바람, 비를 함축하며 새벽과 밤사이를 선순환 시킨다. 산, 바위, 별, 풍경들은 여행자의 동선(動線)과 함께 움직이며 공명한다. 마을과 마을, 사람과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 옛날 사랑방에 모여(모꼬지) 지짐이와 주전부리를 나누면서 외로운 밤을 삭이던 ‘마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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