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江原)은 태백의 준령들을 품고 영동과 영서에 장벽을 세운다. 동서 150㎞, 남북 243㎞에 진부령(인제~간성), 미시령(인제~속초), 한계령(인제~양양), 구룡령(홍천~양양), 진고개(진부~연곡), 대관령(횡계~강릉), 백봉령(임계~동해)으로 마을과 마을, 땅과 땅의 위세를 만든다. 그 앉음새가 육중하다. 첩첩산중 육산(肉山)은 산맥의 맥박을 잠시 에두르며 말(馬)의 숨을 가쁘게 한다. 어찌난 힘든지, 단종이 한양서 출발해 유배지 영월 청령포에 가는데 엿새가 걸렸다. 31번 국도를 따라 영월군 주천면과 한반도면 경계 지점에는 군등치(君登峙)라는 표지석이 있다. 단종이 영월로 귀양 갈 때 넘었던 고갯길이라 하여 임금 군(君), 오를 등(登), 언덕 치(峙) 자를 붙인 이름이다.
강원의 바람은 산의 바람이고, 고갯길의 바람이다. 마의태자를 얼렸던 한계령(寒溪嶺)과 오색령은 구름마저도 숨이 차오르게 하는 고도(高度)다. 굽이굽이 대관령과 미시령은 마을과 마을을 나누고, 사람과 사람을 머물게 하는 그리움의 정소(定所)다.
산맥의 습기를 머금은 빗방울이 잎새를 적신다. 매지구름이다. 그 차가운 냉소는 모든 생물의 푸른 핏줄에 스며들어 근육을 깨운다. 꽃도 풀도 나무도 신이 났다. 한 방울이라도 더 제 몸의 혈관 속에 응축시키기 위해 안간힘이다. 고갯길의 빗방울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다. 물과 물이 결합해 그 경계가 모호하다. 다만 빗방울이 바닷물과 맞닿는 순간의 찰나는 명징하게 보인다. 서로의 신분을 알리는 접촉은 파장(波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