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 달간 소주 100병…외로움에 취하다
21. 한 달간 소주 100병…외로움에 취하다
  • 미디어붓
  • 승인 2019.08.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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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에서 해먹는 야영 음식.
즉석에서 해먹는 야영 음식.

외로움이란 돌려 말하면 두렵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외롭지 않기 위해 좋든 싫든 서로 엮인다. 외로운 척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밝은 척 한다. 여행이란 자신을 알아가는 동시에 자신을 버리는 퍼포먼스다. 마치 아무 것도 몰랐다는 듯이 시치미 뚝 떼고 그냥 묻어가려는 속성도 알고 보면 ‘나, 아프니까 봐 달라’는 얘기다.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여행하지만 외로움은 심화된다. 마음에 바람이 드니 육신이 흔들린다.

외로움도 골병이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그리운 사람들의 정령은 때론 처절하게 사무친다. 보통의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보통의 감정선(感情線)이 일순간에 폭발하는 것이다.

여행은 일상의 소소했던 행복들을 하나둘 끄집어내며 복기시킨다. 가벼이 먹었던 한 끼의 식사, 가벼이 생각했던 아내(남편·연인·가족), 가벼이 느꼈던 잠자리, 가벼이 먹을 수 있는 부엌시스템, 따따부따 가시버시의 잔소리, 추위와 비를 막아주는 따뜻한 처마가 행복 그 자체임을 깨닫는다.

저 편에 서성거리는 어둠이 싫어서, 득달 같이 달려드는 외로움이 싫어서, 여행 중 계속 술을 마셨다. 소주 세 병을 1.5병씩 나눠 마셨다. 여행 한 달간 마신 것이 100병이었다. 비박도, 숙박도 온전한 잠을 주지 않았기에 술은 일종의 수면제였다. 고뿌(컵)로 세잔씩 나누면 거의 기절하다시피해서 잘 수 있었다. 술은 하루의 활력을 불어넣는 짧은 휴가이자 하루의 마침표였다. 소주 한 잔에, 몸은 수랭식 내연기관이 되어 추위를 달래고, 어둠을 삭혀주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폭음을 해도 아침 6시가 되면 반사적으로 기상했다. 근육에 기억력이 생긴 결과 다른 생각에 빠져있어도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안주는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날은 찌개를 놓고 마셨고, 어떤 날은 탕(湯)을 안주 삼았다. 냄비 삼겹살 구이는 일품이었다. 삼겹살을 먹고 싶었는데 불판이나 프라이팬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양은냄비 안에 삼겹살을 구웠다. 유레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고기에서 나온 육즙과 육향이 냄비 안에 고스란히 남아서 삼겹살의 고소한 맛을 배가시켰다. 보통 기름을 뺀다고 불판 밑에 종이컵을 받치곤 하는데, 냄비 삼겹살은 기름조차도 육즙과 절묘한 앙상블을 이뤘다. 그랬다. 우린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였다. 불을 다룰 줄 알고, 도구를 활용할 줄 알며, 맛의 3차원을 찾아갈 줄 알았다. 절묘한 변통으로 야영의 요리는 때론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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