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르네상스 시대부터 성행한 비밀매음 ‘사창’
23. 르네상스 시대부터 성행한 비밀매음 ‘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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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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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사창리.
부안 사창리.

사창리(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산 아래 자리 잡은 전북 고창군 부안면 사창리는 산(山)만큼이나 고즈넉하다. 마을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산이나 도로, 개울 사이로 불분명하게 서로의 영역을 확인할 뿐이다. 이는 허락된 방임이다. 한쪽에선 넉넉한 유량의 천(川)이 흐르고 한때 말구종(-驅從)이 지나쳤을 법한 좁은 길이 나 있다. 마을 마당에 당장이라도 잔치가 벌어질 것 같은 풍요가 보인다. 사창리는 조선 시대 사창(社倉)에 저장한 곡식을 봄에 꿔주었다가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거두던 ‘곳집’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민간 자치적 성격을 띤 일종의 빈민 구휼제도로 의창(義倉), 상평창(常平倉)과 함께 삼창(三倉)의 하나다. 사실 고창은 만경강·동진강을 품은 파랑상(波浪狀) 준평원 지대로 호남평야의 한 축이다. 당연히 곡물창고가 번성했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비밀 매음을 뜻하는 ‘사창(私娼)’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도 같은 이름의 사창리가 있고 충북 괴산읍, 화성시 양감면, 충남 태안군 이원면, 전남 무안군 몽탄면, 전남 장성군 삼계면,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도 ‘곳집’ 흔적이 남은 지명이 살아있다. 1980년대 몇몇 퇴폐업소가 운영되면서 오해를 샀던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司倉)동은 다섯 번의 행정구역 개편과정을 거치면서도 명맥을 유지 중이다. 무려 121년째다.

섶벌(토종벌) 같이 나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은 ‘여승’이란 시에서 남편 없이 어린 딸을 데리고 힘겹게 살다 딸마저 잃게 된 평안도 산골 여인의 삭발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삭발은 세상과의 절연이다. 기독교 성녀 아그네스가 그리스도와의 약혼을 이유로 집정관 아들의 구혼을 거절했다가 삭발 나신으로 사창굴에 떠밀렸던 얘기도 유명하다.

매춘이 성행하게 된 것은 성(性)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르네상스시대다. 몰락한 계급의 여성들이 창녀로 몸의 값어치를 스스로 낮춘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춘희(椿姬)’로 상징되는 매춘부가 생겨나면서 사교생활이나 유행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 매춘을 법으로 금지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께 유행한 성병이 계기가 됐다. 우리의 경우는 조선 시대에 지방사또의 수청을 드는 관기(官妓)가 있었고 관기출신이 경영하는 주막에서 매춘이 행해지곤 했다. 조선 말기의 유녀(遊女), 일제 강점기의 유곽(遊廓)은 매춘을 공인한 일종의 공창이었다.

흔히 매춘부들이 모여서 밀매음하는 곳을 사창가(私娼街)라고 부른다. 서울 미아리텍사스나 청량리 588, 인천 학인동의 속칭 ‘끽동’, 대전 중구 유천동 텍사스, 수원시 고등동과 성남 중동의 사창가 등이 대표적인 집창촌이었다. ‘텍사스’라는 말은 서부활극에서 총잡이들이 말에서 내려 1층 바(bar)에서 술을 마시고 2층에서 윤락녀들과 함께 관계를 맺는 상황을 빗대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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