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축구공으로, 도시락통으로 활약한 ‘오줌보’
25. 축구공으로, 도시락통으로 활약한 ‘오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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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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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성암
구례 사성암

방광리(전남 구례군 광의면)

구례는 삼대삼미(三大三美)의 고장으로 불린다. 지리산과 섬진강 때문이다. 봄이면 강변 연안도로를 가득 메우는 화사한 벚꽃, 여름이면 계곡마다 우거진 짙은 신록, 가을이면 붉게 타는 만산홍엽, 겨울에는 순백의 하얀 눈꽃이 만개한다. 그래서 장삼이사들은 이 땅을 설명할 때 차경(借景)을 떠올린다. 경치는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빌린다는 이유에서다. 창(窓)이라는 액자를 통해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이니 소통이기도 하다. 그 경치는 물감으로 그린 평면의 물성이 아니라 풍경화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사실적이다. 마을 너머 소나무 군락은 뿌리 아래 켜켜이 쌓인 솔가리로 따스함을 주고, 줄기에 더덕더덕 붙은 수피(樹皮)는 북풍과 칼바람을 막아준다. 야생초들은 제 몸을 사르면서 바싹 마른 씨앗을 남겨 다음 세대를 기약한다. 나무가 아닌 풀의 희나리다. 숱한 여행자들이 밟은 땅은 사부랑사부랑 지력(地力)을 돋우고, 그 땅과의 유대감은 세대가 거듭되며 더욱 명료해진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放光里)는 산촌마을이다. 오줌통 광(胱)자가 아닌, 빛 광(光)자를 썼으니 이름이 주는 민망함도 잠시다. 방광리라는 지명은 신라 35대 경덕왕 이후에 생겨났는데, 판관(判官)이 살았다하여 판관마을이라고 불리던 것이 판괭이로 바뀌고 다시 방광으로 개칭됐다고 한다. 지리산 노고단 관광도로 관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가가 어려울 때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기름지고 넓은 청정 들판에서 생산된 송이버섯, 우리 밀, 단감, 오이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방광’ 얘기가 나오면 때때로 공인구(公認球)가 화제가 된다. 68.6~71.3㎝ 크기의 축구공 원조는 돼지 오줌보에서 비롯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신라 김유신과 김춘추가 돼지 오줌보로 공을 찼다는 기록이 나온다.

예전 명절이나 잔치 때 돼지를 잡으면 아이들은 고기보다는 오줌보에 눈이 쏠렸다. 칼잡이는 청숫돌에 날을 세운 시퍼런 단도(短刀)로 간(肝)을 떼어 돌린 뒤 본격적으로 오줌보를 분리했다. 죽음을 맞이한 돼지의 방광은 오줌이 가득했다. 모두들 황천길로 가기 전, 떨었던 두려움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오줌보 표면의 기름기를 떼어내 질겨지길 기다린 뒤, 신발로 살살 문질러 오줌을 빼냈다. 오줌은 하수구를 노랗게 물들이다가 사라졌다. 문제는 홀쭉해진 오줌보 끄트머리를 잡고 바람을 부는 것이었는데 엔간해선 부풀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자전거에 바람을 넣는 펌프를 동원하기도 했다. 힘겹게 바람이 차면 실로 가장자리를 묶어 축구공을 완성시켰다.

몽골 기마대가 엄청난 기동력으로 세계를 정복한데는 비상식량인 ‘보르츠’ 영향도 컸다. 보르츠는 소, 말, 양 등의 고기를 찢어서 말린 육포다. 보르츠를 빻은 가루를 신축성이 좋은 소나 양의 방광에 넣어 갖고 다니다 물에 풀어 마셨다. 10㎏의 보르츠면 1년 치 전투식량이어서 보급문제가 해소된 것이다. 지금도 몽골 사람들은 여행할 때 보르츠를 갖고 다닌다. 휴대·운반·보관이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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