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줄 듯 말 듯 애간장 태우는 ‘꽃순이’ 순정
48. 줄 듯 말 듯 애간장 태우는 ‘꽃순이’ 순정
  • 미디어붓
  • 승인 2020.03.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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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팔조리.
경주 팔조리.

내줄리(경북 영주시 안정면)

오토바이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온몸으로 스피드를 느끼는 것이다. 스피드는 바람의 온도만 봐도 안다. 오픈카의 바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스피드광들이 열광하는 모터사이클(배기량 999㏄의 수랭식 직렬 4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193마력의 성능을 낸다. 하지만 스쿠터급 라이더에게 속도란 사실상 무의미하다. 영주시 안정면에서 만난 초특급 라이더들은 할리데이비슨에 ‘하만 카돈’의 오디오시스템을 갖춘 레이서들이었다. 멀리서 우리 스쿠터를 발견한 이들이 ‘레니게이드’(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미드 주인공)처럼 다가와 엄지척을 들어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아기를 타고 다니지’하는 표정이었다. 언제, 어디서 왔고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왔다. 오토바이보다 훨씬 커 보이는 짐칸을 보고는 한숨도 쉬었다. 시종 친근감을 보이려는 듯했지만 만면엔 조소가 가득했다. ‘아는 체나 하지 말지. 오토바이가 작다고 깔보는 거야? 걱정들 마. 우린 속도가 느려도 달릴 거야. 달팽이처럼….’

이런 공룡 라이더와의 만남은 라이딩 도중 여러 차례 더 있었다.

경북 영주시 안정면 ‘내줄리’는 지명에서 풍기듯 무엇이든 내줄 것 같은 마을처럼 보인다. 인심 좋은 시골사람들이 한걸음에 새참을 내올 것 같은, 그래서 타자(他者)의 입장에서 보면 뭐든지 받을 것 같은 상상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정작 지명의 유래를 알고 보면 싱겁기 그지없다. 오른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영천군 상줄리의 줄포 안쪽에 위치해 있어 내줄리(內茁里)라는 것이다.

내줄리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이뤄진다. 그만큼 곡식생산량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자연마을로는 내줄, 대추밭들, 점말, 점말뒤마을 등이 있다. 대추밭들마을은 내줄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대추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점말마을은 내줄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점말뒤마을은 점말의 뒤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굶주린 백성에게 곡식을 내준다면 그보다 더한 선정(善政)이 어디 있을까. 줄듯 말듯 애태우게 하는 이웃마을 ‘꽃순이’(가칭) 때문에 애간장이 녹던 순진한 시골총각에게는 꽃순이를 꼭 품을 것이라는 기대감 자체가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 희망이 없었다면 하루의 슬픔도 버텨내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그것이 꽃순이의 연정이든, 연민이든, 가련하게 여기는 눈빛이든 간에…. 뒷동산에 올라가 꽃놀이 간 그녀의 향기를 좇고, 어둠 깔린 고샅길에서 그녀의 그림자를 그리워하던 총각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그녀의 마음이 열리기를 고대할 수밖에….

마치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사이에 먹는 새참(사이참) 같은 것이다. 새참은 농부와 일꾼들에게 하루 3끼 외에 1~2차례 식사를 더 내주던 막간의 위로였다. 그것이 주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간에 ‘조금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환상’을 품게 했다.

큰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논배미 사이로 걸어오는 아낙을 보면 모두들 신이 나서 힘을 냈다. 희망을 보는 순간 노동의 수고로움이 스르르 녹는 것이다. 막걸리 술참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 잠깐 쉬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짬’에 대한 기대, 이런 것들이 희석되면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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