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3인칭의 시선’ 관음은 음침한 도둑질
55. ‘3인칭의 시선’ 관음은 음침한 도둑질
  • 미디어붓
  • 승인 2020.04.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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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독우물길.
당진 독우물길.

영자가 뒷걸음질을 친다. 남자는 점점 더 다가온다. 영자의 발꿈치가 방구석 끝에 닿자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그리고 그날, 스무 살 영자의 인생은 그녀의 작은 발 아래로 추락한다.

1975년 개봉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시골에서 올라와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영자가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여공, 버스 차장 등을 전전하다가 환락가 작부로 추락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가장 충격적인 요소는 강간의 묘사다. 2분가량의 강간 시퀀스는 가해자의 시점 안에 프레임을 두고, 남자가 영자에게 하는 행위를 곁에서 관찰하는 시선으로 채워진다. 다시 말해, 가해자와 이를 지켜보는 3인칭의 시선으로 관음증적 쾌락을 앵글로 잡은 것이다.

여기서 ‘몰래’가 키포인트다. ‘몰래’란 훔쳐본다는 계략을 뜻한다.

몰래 훔쳐보면 스릴이 더해지고, 쾌감과 재미가 증폭된다. 관전효과다. 무대에 오르지 않고 무대를 관람하는 수동적 메커니즘은 자신을 주인공과 매치시켜 직접 행위자의 영역 안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관음은 주체처럼 굴지만 실은 모조다. 타인의 행위를 훔쳐 본인의 즐거움으로 삼으니 절도다. 음침한 도둑질은 상상을 불허한다. 태곳적부터 자연적으로 전승돼온 이 노략질은 은밀함에서 벗어나 공격적으로 진화돼왔다. 타인의 울타리를 넘어 침실까지 구둣발로 들어가 집요하게 벗기고 또 벗긴다. ‘몰카(몰래카메라)’가 포르노의 주류를 이루고, 사적 공간인 침실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면서 섹스장면까지 보여주는 사이트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엿보기’는 예로부터 몰염치한 범죄로 지탄을 받았다. 우리 풍속에는 ‘지지뱅이’와 ‘꾀쇠아비’라는 도청꾼이 있었다. 지지뱅이는 밀회 장소인 물레방아간이나 뽕밭에 숨어 있다가 정사를 나누는 남녀를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 꾀쇠아비는 남의 집 처마 밑이나, 주막에서 사람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잇속을 챙겼다.

미국의 뒷골목에는 핍필름(peep film)이라는 ‘엿보기 영화관’이 있다. 영화관 홀 박스에 들어가 25센트짜리 동전을 넣으면, 스크린에 미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목욕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물론 연출된 것이지만, 남성들은 이를 지켜보면서 자위행위로 욕구를 해소한다.

관음증을 자극하는 고전적 수법은 은밀한 노출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유흥가의 매춘부들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목욕을 즐겼다. 일본의 기녀들은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훤히 드러나는 복장을 하고, 2층 난간에서 손님들을 유혹했다. 부유해 보이는 길손이 지나가면 노래를 불러주고 팁을 받았는데, 이를 ‘껍데기 벗기기’라고 했다.

관음증을 유발하는 대표적 섹스상품은 중국 원나라 윤락가에서 탄생했다.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 따르면 도성에서 공개적으로 매음을 하며 살아가는 창기들이 2만5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매춘부 숙소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생겨서 요자(窯子)라 했다. 이 요자 벽에 구멍을 뚫어놓고, 나체로 노래 부르는 장면이나 잠자리 광경을 행인들이 엿보게 만들었다. 구멍으로 음탕한 장면을 엿보다가 억제할 수 없으면 문을 두드리고 화대를 치른 후에 침대에 올랐다.

관음증은 노출증과 맞물린다. 노출증은 대개 자신의 벌거벗은 몸, 특히 음부 등을 노출하여 타인에게 보임으로써 성적 쾌감을 느끼거나 만족을 얻는 증세다.

중세 유럽 귀부인들은 ‘뚫린 의자’라는 이동식 변기를 사용했다. 그래서 귀부인들에게 ‘점 있는 엉덩이’, ‘수풀이 우거진 여인’ 등의 별명이 붙었다. 일부 여인들은 일부러 풍만한 엉덩이나 매력 있는 사타구니를 공개하기 위해 요의를 느끼지 않음에도 뚫린 의자에 앉아 치마 걷어 올리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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