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드렁니
뻐드렁니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8.12.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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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연합뉴스 제공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연합뉴스 제공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을 들었다 놨다. 열풍을 일으킨 이유는 뭘까. 프레디 머큐리가 보여준 압도적인 보컬과 무대장악력, 천부적 음악성, 그리고 또 한 가지. 루저(loser)의 진정성이 결정적 한방이었던 것 같다. 보헤미안의 떼창(sing along)은 뻐드렁니 사이서 전율했다. 어려서부터 뻐드렁니 별명을 달고 살면서 입을 숨기고, 말을 숨겼던 루저는 챔피언을 외친다. 어찌 숨겨볼 도리가 없는 불구의 치아는 속을 하나씩 드러내며 절규한다. 보잘 것 없는 유년이었고, 보여주기 싫은 외모였지만 그는 세상 밖으로 발치됐다.

▶만화에서 나올 법한 뻐드렁니, 바람이라도 베어버릴 듯한 매부리코. 그는 루저라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루저인 자기 자신을 스스로 모른 체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가면을 벗어던졌다. 가면은 뻐드렁니였다. 그런데 드러내자 오히려 감춰졌다. 사람들은 그의 뻐드렁니를 보지 않았다. 소리만 들었다. 콤플렉스는 콤플렉스로 견딘다. 프레디는 에이즈 감염을 세상에 알린 다음날 죽었다. 프레디의 콤플렉스는 에이즈가 아니라 뻐드렁니였다.

▶사랑니 2개를 발치하던 날, 감각기관의 포용력을 잃었다. 앙다문 입안에서 피맛이 났다. 그리고 10년간 치과 가는 일은 없었다. 아니, 철저하게 도망쳤다. 치과는 콤플렉스를 증폭시켰다. 치약만 봐도 통증이 떠올랐고, 치약 맛은 피맛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어느 날, 입안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여기저기 치아가 썩기 시작했던 것이다. 금니 3개와 아말감(amalgam) 3개를 쑤셔 넣었다. 거금이 든 것도 억울했지만 철인(鐵人)으로 변해가는 게 더 약 올랐다. 세 번째 큰 어금니 ‘사랑니’는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 간니(젖니가 빠지는 것)와 맹출(치아가 잇몸을 뚫고 나오는 것) 사이에서 피맛을 본 탓일까. 이제 치과만 봐도 통증이 온다.

▶뻐드렁니 같은 불편한 시간들이다. 입안에서 무언가 거치적거리는 것 같은데 처방하기가 싫다. 그 이물감은 발치하면 그만이지만 그냥 숨고 만다. 썩고 썩어서 뽑을 수밖에 없을 때까지 참는다. 언젠가는 통증이 사라지리라고 위무할 뿐이다. 그러나 시간은 스스로 발치되지 않는다. 끝까지 해골 안에서 심각한 두통을 안길 것이 자명하다. 치부를 들키고만 사람처럼 인생 밖에서 불안하게 서성거린다. 종잡을 수 없다. 스쳐지나간 모든 것들과, 지금 마주친 모든 것들이 마치 뻐드렁니처럼 계륵이다. 닭의 갈빗대 같이 목울대가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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