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똥'이다
밥은 '똥'이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5.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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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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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똥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기에, 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려고 한다. 밥을 먹고 배설하고, 그 밥은 세월의 더께가 되어 밥벌이의 근원이 된다. 하루 삼시세끼 놀이는 지겹다. 눈을 뜨자마자 밥숟가락을 드는 일은 무한히 권태롭다. 밥은 일상의 퇴적이고, 똥은 시간의 퇴적이다. 뒷간에 앉아 삶의 파편들을 흘려보내면서 퇴적의 시간을 내려놓는 순간, 하찮고 사소한 것들은 해방된다. 무수한 번뇌의 시간들이 쏟아져 내린다. 온전한 밥은 없다. 누군가는 굴종해서 얻은 밥이고, 누군가는 울면서 얻은 밥이다. 그 밥이 온전할 리 없다. 힘겨운 밥벌이로 얻은 밥은, 밥 자체가 짜다. 스스로에게 밥을 주면서 내일의 밥을 강요하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난 하루 두 끼 정도는 알아서 차려먹는다. 점심을 빼곤 그렇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와의 사이클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쭉 해오던 습관에서 비롯됐다. 고독한 밥상이다. 외딴집은 외로웠고 밥 또한 외로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오면 밥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물론 혼자 먹더라도 김치쪼가리에 먹어본 적이 없다. 푸성귀만 잔뜩 넣은 된장찌개라도 끓였다. 나에 대한 예의였다. 하찮게 먹으면 하찮게 여겨졌다. 김치를 볶고 오이와 고추를 따서 제대로 차려먹었다. 그 버릇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밥 먹는 일은 권태롭고 귀찮지만, 밥의 권력에 굴종하지 않는다.

▶나는 ‘밥 안주’를 즐긴다. 별도의 안주보다는 밥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신다. 그럴 때마다 피식 웃곤 한다. 밥 안주가 좋다지만 그건 1차 이후에 든든한 뱃속을 위한 위무이기 때문이다. 처음 마실 때부터 밥 안주를 벗 삼는 건 실례다. 때론 슬퍼지기도 한다. 그래도 밥 안주를 사랑하는 건 소시민적인 고집이다. 적당하게 힘들고, 적당하게 슬퍼지는 그 저렴한 허기가 좋다. 그래서일까. 나와 선술집에 마주 앉은 술친구들은 당혹해한다. 차라리 그럴 거면 집에서 ‘깡소주’나 마실 일이지, 왜 안주 고르는 일에 힘을 들이냐고. 어쩌랴. 뱃속에 기름때 끼고 더부룩한 그 느낌이 싫은 걸. (고백하자면) 언제부터인가 ‘우루◯’를 장복하면서 내 슬픈 간(肝)을 알량하게 위로하고 있다.

▶중년의 남자들은 아침잠이 없다. 아무리 피곤해도 여섯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늙어가는 징조라며 의학적 용어를 들이대지만 어찌됐든 하루가 빨리 시작된다.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스스로를 시간에 맞춰가는 진화의 단계를 거쳤다. 그것은 밥을 먹기 위해 밥벌이 전선에 일찍 출정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섭리가 작용해서다. 그래서 인간의 배설이 가장 더럽고 구리다. 밥은 밥을 먹기 위한 순환과 단절이 필요하다. 생사의 존망이 거기에 달려있다. 우리가 ‘똥’이라고 말하는 순간 한없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지는 건 일종의 체면이다. 무조건 순결하게 느껴지고 싶은 최면이다. 오늘도 같은 생애를 사는 사람들은 밥을 먹고, 밥벌이를 향해 진격한다. 그 밥벌이가 설령 슬퍼지더라도 밥만큼은 행복하게 드시길 조심스럽게 권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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