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가 싣고 왔던 크리스마스의 추억
리어카가 싣고 왔던 크리스마스의 추억
  • 최진섭 기자
  • 승인 2018.12.23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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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달력을 벗겨내고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바라보며 기쁨과 환희, 후회와 아쉬움 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낡은 사진을 바라보듯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는 오래된 12월의 추억을 들춰보곤 합니다. 아무래도 12월의 추억은 두근두근 설렘을 가득 담은 크리스마스가 배경이 되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최근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그다지 설레는 마음이 없습니다. 기다림도 시들해 진 듯 합니다.

‘나이를 먹어서’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삶에 찌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또 감정이 메마른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제 생각엔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차츰 시들해지는 것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을 알리는 캐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

But the very next day

You gave it away ……

저에게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바로 웸의 ‘Last Christmas’ 였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어디선가 경쾌한 리듬의 Last Christmas가 흘러나오면 ‘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마냥 신이 났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라고해서 항상 반복되는 어느 하루와 별반 다를 것도 없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그냥 거리를 쏘다녔습니다. 최근에는 특별히 갈 일이 없어 언제 가봤는지 기억조차 없지만, 예전 대전 은행동 거리는 이맘때쯤이 한 해 중 최고로 흥겨운 축제의 기간이었습니다.

사진=미디어붓
사진=미디어붓

은행동 거리는 카세트테잎을 파는 리어카들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을 전했습니다. 오색빛깔 찬란한 네온을 칭칭 감고, 카세트테잎을 하나 가득 실은 리어카 수십여대가 각기 다른 크리스캐롤을 틀어대는데도 전혀 시끄럽다고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서너 발걸음마다 캐롤이 바뀌면서 어느새 서너 곡의 캐롤이 마치 하나의 캐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보다 한참을 더 사신(?) 어떤 분은 크리스마스하면 ‘고고장’이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통행금지가 있었던 시절을 사셨던 그 분은 크리스마스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돼 할 일이 없어도 늦은 밤에 무작정 거리로 뛰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쿵꽝쿵꽝 요란한 고고장에서 땀이 흥건해지도록 신나는 캐롤에 맞춰 밤새 춤을 췄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교회나 커피숍,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혼자 조용히 들어야 되는 그런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게 됐습니다. 저작권료(공연사용료·공연보상금)때문이라고 하니 누굴 탓할 수는 없지만, 거리에서 캐롤을 들으며 흥겨워했던 까까머리도 중학생도, 고고장에서 밤새 신나게 흔들었던 젊은 언니도 이제는 그저 기억 속에서나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더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크리스마스에 눈도 오지 않고, 그냥 막 춥기만 하다는 기상 예보가 있습니다. 캐롤도 없고, 눈도 없고, 강추위에 미세먼지만 가득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호흡기 조심하세요’라는 말이 새로운 크리스마스 인사가 되는 건 아닌지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그나저나 그때 그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을 알렸던 리어카 아저씨들은 어디선가 캐롤을 틀어놓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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