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사랑 그리는 ‘피카소 이장님’
행복·사랑 그리는 ‘피카소 이장님’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1.17 14: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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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괴산군 사담리 문화마을 신성연 화백
낮에는 이장님, 밤에는 화백님 별칭 들으며 재능기부 앞장
윤서 갤러리 열고 학생, 주민들 가르치며 삶의 열정 쏟아
신성연 화백. 미디어붓
신성연 화백. 미디어붓

숟가락으로 꽃잎을 그리고, 옥수수수염으로 표정을 담는다. 어떨 때는 칫솔이나 손가락도 사용한다. 도구의 원형질을 즐긴다. ‘붓’을 사용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그의 ‘붓’이다. 20년 넘게 그림붓을 잡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괴산군 사담리 문화마을 신성연 화백은 ‘피카소 이장’으로 통한다. 이 마을 벽엔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매년 봄이 되면 잡초더미로 흉측해진 경로당과 놀이터 주변을 벽화로 재탄생시킨다. 그의 손끝에서 사계절 농촌풍경이 생명을 품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신 화백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주경야독으로 공부했다. 검정고시로 중·고교를 마치고, 방송통신대까지 졸업해 만학도의 꿈을 이뤘다.

“어린 시절, 낙서하는 버릇이 그림 그리는 계기가 됐어요. 미대를 나오거나 학원, 개인 레슨을 단 한번이라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평소 한국화 그림을 좋아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독학으로 시작했죠. 신문지부터 머그컵, 나무, 전봇대까지 생각나는 대로 그렸어요. 그러다보니 실력이 조금씩 늘더라고요. 지난 200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동양화 부문에 입선했습니다. 촌에서 ‘흙’과 함께 머물 것 같았지만 ‘붓’으로 인생전환기를 맞은 거죠(웃음) 2010년에는 중원문학 공모전의 시(詩)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신성연 화백. 미디어붓
신성연 화백. 미디어붓

그는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15년, 운전면허 강사로 10년을 살았다. 어찌 보면 그때의 삶은 여백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형화된 박제의 삶에서 벗어났다. 공백을 채워가기 위해서였다. 이름 하여 ‘담백한 자기 고백’이다. 누군가는 제자리에서 지난한 삶의 여정을 밟고, 누군가는 일탈의 부싯돌이 되어 넝마가 되지만 그는 그만의 세상을 관조했다.

“47년간 그림을 그렸으니 1만5000개 작품은 했겠네요. 여행은 밖으로 떠돌면서 세상을 읽는 것이고, 독서는 앉아서 세상을 읽는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면 지금의 삶은 없었을 겁니다.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멋진 여행이었다고 생각해요. 연습 삼아 그린 것이 실전이 됐고, 제2의 삶이 된 거죠. 저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무슨 일이든 주저하지 말라고요. 인생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낮에는 이장님, 밤에는 화백님이라는 별칭을 들으며 재능기부도 열심히 했다.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3년간 동양화 취미반을 열었다. 더불어 동양화·서양화가로 활동하며 벽화사업을 하고 강의와 체험학습도 병행하고 있다. 2년 전에는 집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손녀 이름을 딴 ‘윤서갤러리’를 오픈했다. 신 화백의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물장소이자 인생 희로애락이 점철된 행복한 보루다. 그는 갤러리를 손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고향의 정령, 농촌의 풍경을 오롯이 화폭에 담길 원하는 것이다.

신 화백의 윤서갤러리. 미디어붓
신 화백의 윤서갤러리. 미디어붓

“사재 3억원을 들여 500㎡ 부지에 250㎡ 규모의 전시실과 강의실을 갖춘 화랑을 열었습니다. 이곳에서 동양화, 서양화, 버닝화, 시, 서예 등을 전시하고 있어요. 붓과 팔레트, 이젤 등의 그림재료와 책상 30석을 마련해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무료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늦은 밤까지도 집에 돌아갈 생각을 않고 그림 삼매경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 흐뭇합니다. 삶의 향기가 가득한 예술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게 꿈입니다.”

신 화백의 화풍은 자유분방하다. 다양한 기법으로 누구나 그릴 수 있도록 가르친다. 농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자연을 담게 하니 복잡하지 않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미술 교육 체험프로그램은 배우면 배울수록 빠져들게 한다. 그가 고안한 기법은 삼나무 판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인두를 이용해 본을 뜨고 작품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색을 입힌다. 때문에 기본기가 없어도 자신만의 감성과 색채를 쉽게 담아낼 수 있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남짓이다.

“해바라기, 바람꽃, 백일홍, 어리연, 금잔화, 절굿대, 나팔꽃, 초롱꽃, 복수초, 원추리, 쑥부쟁이를 보세요. 꽃의 절정은 낙화(落花) 직전입니다. 필 때보다 질 때 더 아름다운 생멸(生滅)의 미학이 있는 것이죠. 하롱거리는 나비처럼, 쏟아지는 꽃비처럼,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눈사태처럼 비장미의 극점까지 자신을 끌어올렸다가 마지막 순간 불꽃으로 사그라지는 모습은 정말로 황홀합니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두렵기 때문이죠. 하지만 두려워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시작하는 순간이 가장 소중한 출발점이 됩니다. 요즘 보면 면소재지의 젊은 아주머니들도 아마추어 화가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재능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그림 그리는 것은 청소년 인성교육에도 좋아요. 실제로 우울증 같은 질병도 고친 사례가 있습니다.”

신 화백은 62년째 괴산군 사리면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진정한 가치는 나눔 정신이다. 이장직은 얼마 전에 내려놓았지만 사리면 농촌중심지활성화(선도지구)사업 운영위원장과 관내 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08년부터 한마음 체육대회, 효문화축제 등 각종 행사 때 그림을 전시·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지역사회 인재육성을 위해서다.

“갖고 있는 재능을 누군가에게 전수하면 제가 무언가 받는 느낌입니다. 더구나 마을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는 일은 즐거운 호사죠. 문화마을에 산다는 자부심 때문일 겁니다. 고향에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할 거예요. 외지인들이 우리 마을의 벽화를 보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갖게 된다면 이보다 더 뿌듯한 일은 없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붓’을 잡고 ‘붓’의 명인이 되기까지 그 시간들은 찬연했다. 이제 행복한 추억과 소중한 기억들이 모여, 그의 손에서 행복한 마을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피카소 이장님'이 오늘도 묵묵히 ‘붓’을 잡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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