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이끼의 삶과 닮은 노동자의 벼린 생애
68. 이끼의 삶과 닮은 노동자의 벼린 생애
  • 미디어붓
  • 승인 2020.08.1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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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노동리 이정표. 미디어붓DB
전남 보성 노동리 이정표. 미디어붓DB

대학시절, 막노동 아르바이트가 떠오른다. 그땐 새벽부터 현장에 나가 4·5층까지 모래·자갈·시멘트를 담은 질통을 지고 오르내렸다. 그때 노동요는 다름 아닌 막걸리였다. 계단 중간과 꼭대기 층에 막걸리를 한 통씩 감춰놓고 어깨가 빠질 듯이 고통이 밀려오면 막걸리 한 사발씩 하면서 고통의 무게를 덜어냈던 것이다.

“어여 어허여루/상사 디여/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 보소/어루화 농부님 말 들어여/전라도라 하는 데는 신산이 비친 곳이야/이 농부들도 상사소리를 메기는데/각기 저정거리고 너부렁거리네.”(긴농부가)

“어화 어루/상사 디여/여로농부들어/어화 농부들 말 듣소/부귀와 공명을 탐치 말고/고대광실을 부러 마소/오막사람이 가지가지라도/태평성대가 비친다네/어화 어루/상사 디여.”(자진농부가)

노동(勞動)하면 보통 공사판 노가다(どかた)를 떠올린다. 일용직 날품으로 막노동을 하는 것이어서, 폄훼의 대상으로 질시하는 경향이 짙다. 보통 막노동은 여명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대에 시작한다. 성수기에는 보통 한 달에 20~24일 정도 일하니 1년에 200일 안팎이다. 비가 오는 날은 미끄러짐이나 누전 문제로 일을 못하고, 7~8월의 장마철도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겨울에는 콘크리트가 정상적으로 굳지 않아 일을 접는다. 인력사무실의 경우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에는 일거리가 별로 없다. 결국에 이런 날 저런 날 다 빼면, 육체적 부담이 덜한 기능공은 보통 150~200일, 육체적 부담이 강한 단순 노무 인력은 150일 정도를 일한다. 특히 일용직은 인력사무소에서 일감을 받아 일을 나가기 때문에, 아침 대기시간, 일하는 시간, 일당 수령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11시간~13시간 가까이 몸이 묶인다.

막일은 천대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이끼의 삶과 닮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천천히 들러붙어 사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스며들 듯 사는 인생 같다. 이끼는 원시적인 식물이라 꽃이 피지 않고 뿌리와 줄기, 잎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뿌리는 헛뿌리로 몸을 지지하는 역할만 하고, 관다발도 발달되지 않아 물과 영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해야 한다. 이끼는 물속에 살던 조류가 진화해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육상 식물이다. 그러다보니 살아가는데 반드시 물기가 필요했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주로 자라게 됐다. 집 주변의 돌담이나 그늘지고 축축한 마당, 습기가 많은 숲속, 계곡의 바위나 늪의 가장자리, 물 속 등 다른 식물이 뿌리내리기 힘든 물가에서도 이끼는 잘 자란다.

이끼는 비록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지만 자연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흙이 무너지거나 공사 등으로 맨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맨 먼저 나타나 정착하면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준다. 비를 저장하고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이끼는 세포 속에 대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 평균적으로 자기 몸무게의 5배 정도의 물을 몸에 가둬둘 수 있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비가 왔을 때 이끼는 많은 물을 저장해 홍수와 강의 침식 등을 막고, 비가 잘 내리지 않을 때는 저장했던 물을 내놓아 피해를 줄여준다. 있으나 가려져있고, 쓸모없어 보이나 존재의 가치가 분명히 있는 ‘이끼’와 ‘노동’은 닮은꼴이다.

전북 부안 노동리 버스정류장. 미디어붓DB
전북 부안 노동리 버스정류장. 미디어붓DB

전북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

우리나라 지명중엔 ‘노동리’가 유독 많다.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蘆洞里)는 갈대를 물고 나는 기러기(飛雁含蘆) 형상의 명당이 있어 날 비(飛)에 기러기 안(雁), 머금을 含(함), 갈대 노(蘆)에서 착안해 붙여진 이름이다.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노동리(盧洞里)의 경우에도 갈대가 우거져 있어 갈울(盧洞)이라 이름 하였다고 전해지고,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역시 과거에 갈골이라고 불리던 것을 한역한 것이란 해석이다.

전북 순창군 인계면의 노동리(蘆童里)도 마을의 형상이 갈대밭 사이에 기러기가 새끼를 부화하여 놓은 노안부동(蘆雁孵童)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불렸으며, 이후 노동(蘆東)으로 표기된 것은 노동리와 동촌리의 폐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전남 곡성군 삼기면 노동리(盧洞里)는 통명산을 등지고 계곡에 자리한 마을로, 산이 갈라지는 곳에 있는 산골짜기 마을이라 하여 ‘갈’자와 ‘골’자를 합한 지명에서 갈의골, 가랫골, 가래꼴 순으로 변화하면서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갈을 갈대(蘆)로 보고 노동(蘆洞)이라 표기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예당저수지가 있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 노동리(蘆洞里)도 갈풀이 많아 노동리라 칭했으며 충북 단양군 단양읍 노동리와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노동리, 전남 나주시 남평읍 노동리도 마을 주변이 갈대숲으로 쌓여 고을을 이루고 있다 해 노동리라 했다.

반면, 박달봉 중턱에 위치한 산촌마을인 충남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盧洞里)와 경북 경주시 감포읍 노동리(魯洞里)는 한자가 서로 다르지만, 노 씨가 많이 산다 해서 노동 마을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밖에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路洞里)와 전남 고흥군 동강면 노동리는 신작로가 많지 않던 옛날 대로(大路)와 연결됐다고 해서 길 로(路)를 써서 지명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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