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더함보다는 나눔, 채움보다는 비움이 미덕
92. 더함보다는 나눔, 채움보다는 비움이 미덕
  • 미디어붓
  • 승인 2021.01.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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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다사리 전경. 미디어붓DB
서천 다사리 전경. 미디어붓DB

세계 최고의 쿵푸 배우인 성룡(成龍·청룽)은 1954년 홍콩의 빈가(貧家)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출산 병원비 26달러가 없어 성룡을 의사에게 팔 생각까지 했다. 성룡은 곡예와 무술, 연기를 가르치는 오페라단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잠자리와 풀떼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소룡의 ‘정무문’에 스턴트맨으로 참여했고 이소룡이 갑자기 죽자 주연 대타로 떴다. 코미디와 정극을 결합한 ‘취권’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통해 감독과 제작자로 성장했고 세계 액션영화계를 평정했다. 성룡은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며 30여 년간 모은 20억 위안(약 4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키로 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죽기 전 통장을 깨끗이 비우겠다는 그의 거룩한 뜻이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

깍정이(깍쟁이)란 조선 시대 구걸하던 사람들을 일컫는데 현대 들어 인색한 사람이란 뜻으로 통칭된다. 서울깍쟁이는 도·농이 혼재하던 1960~1980년 격동기에 탄생한 ‘서울 똑순이’의 상징적인 이름표다. 장삼이사들이 ‘공순이·공돌이’라며 폄훼할 때 그들은 공장 굴뚝의 매캐한 그을음을 마시며 돈을 벌었다. 힘들게 번 돈을 고향의 동생에게 부치고, 부뚜막에 앉아 외로움을 곱씹던 ‘누님’들이 바로 첨단 서울을 일궈낸 화수분이다. 서울은 그야말로 생선처럼 뛴다. 한쪽은 프라다, 샤넬, 루이비통, 버버리, 구찌의 명품 부티크가 요란하지만 한쪽에선 땀으로 얼룩진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토스트로 끼니를 때운다. 부자와 노동자가 지하철에서 머리를 맞대고 조는 '인간정글'이 바로 서울이다. 뛰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인조인간 도시이기에 그들은 수많은 세월을 '자린고비'로 살 수밖에 없었다.

장독에 빠진 파리 다리에 묻은 간장이 아까워 십 리를 쫓아가고, 며느리의 생선 만진 손을 씻어 국을 끓이게 하고, 천장에 굴비를 달아놓고 밥 한 그릇 비웠다는 얘기는 구두쇠의 얘기가 아니다. 평생을 부지런하게 일하고 절약해 만석꾼이 된 ‘자린고비’ 조륵 선생의 얘기다. 그는 충북 음성 삼봉리 사람인데 전라·경상도에 심한 가뭄이 들자 그동안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뭐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고 마른 수건도 다시 쥐어짜는 그였지만 굶주린 이웃을 위해선 곳간을 풀고 재물을 털었다. 선생의 도움을 받은 백성들은 그 고마운 뜻을 기려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송덕비를 세웠다. 자린고비는 구두쇠와 다르다. 자린고비는 인색하지만 남에게 베풀고, 구두쇠는 남에게 무조건 인색한 사람을 가리킨다. 애옥살이 살림에 몸부림치는 세상, 조륵 선생의 자린고비 정신이 새삼 돈의 노예(수전노·守錢奴)가 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신(新)자린고비’도 있다. 1980년대 풍요롭게 자란 20~30대 젊은이들이 아낄 땐 아끼고, 쓸 땐 현명하게 쓴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들은 ‘우수리’를 모으고 절약해 자신을 경영하고, 그 돈을 봉사하는 데 쓴다. 요즘 웬만한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은 싼 곳이 2000원, 비싼 곳은 4000원이 넘는데 연탄 한 장 값은 대략 750원이다. 하지만 커피는 마시는 5분간 행복하고 연탄은 5시간 동안 행복하다. 한 잔의 커피 값이면 서민들의 구들장이 이틀 동안 행복해진다. 한 잔의 커피는 아깝지 않게 사지만 한 장의 연탄 값은 아까워하는 이 시대의 씀씀이는 가볍다.

달이 떠오르는 동네가 문 빌리지(moon village)를 보라. 집들이 살갗을 부비며 골목길 사이로 극빈을 안고 사는 곳이다. ‘한국의 마추픽추’ 달동네엔 막다른 길이 없다. 가짐보다 더함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는 걸 깨우치는 곳이 달동네다. 내 영역을 적당히 내주고 적당히 침범하는 곳. 아랫집의 지붕이 윗집의 마당이 되는 곳. 마음의 빗장을 걸고 철옹성처럼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현대사회에 달동네의 넉넉한 마음은 하나의 보루다. 돈은 없어도, 불도저식 재개발에 담이 헐려도 그들에겐 돈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 그들의 골목길은 가난이 낳은 곡선이다. 가난이란 과속방지턱처럼 항상 덜컥거린다.

서천 다사리 이정표. 미디어붓DB
서천 다사리 이정표. 미디어붓DB

다사리(충남 서천군 비인면)

우리 지명중에는 역사성, 유래, 마을의 특성과 달리 발음만으로는 재미와 웃음을 주는 지명이 적지 않다. 충남 서천군 비인면에 있는 다사리는 돈 많은 만석꾼이나 쇼핑광이 살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무엇이든 다 사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사리(多沙里)는 모래가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사리에는 팽나무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마을에서 아침 일찍 밭에 나가던 사람들이 서로 마주서서 근심스럽게 팽나무가 어젯밤에 울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수심에 잠겼다. 나무가 울었다면 바람에 마주쳐서 웽웽하는 바람 소리를 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 당산에서 팽나무가 울었다면 대대로 전해 내려오기를 꼭 난리가 난다 해서 모두가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조선 말 한일합방이 이루어질 때는 몇날 며칠을 두고 팽나무에서 소리가 나서 마을사람들이 불안해했더니 왜구가 밀려왔고, 동학란 때도 그랬다고 한다.

또한 6·25전쟁이 일어나던 며칠 전에는 궂은비가 내리는데 팽나무 밖으로 큰 구렁이가 나와서 한 바퀴 나무를 돌고 나무속으로 들어가더니 나무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백성들에게 기쁨을 알리는 소리는 크고 우렁차게 들렸으나, 6·25전쟁 같은 비극이 닥쳐올 것 같으면 그 소리가 구슬프게 멀리까지 들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호하며 제사를 지냈으며, 칠월칠석날에는 아낙네들이 모여 더욱 성대히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경남도 의령군 대의면에도 정확한 지명유래는 전해지지 않지만 다사리(多士里)가 있다. ‘선비 사(士)’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선비를 많이 배출한 고장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설핏 보면 모든 것을 다 사주겠다는 마을도 있다. 경남 사천시 사천읍 사주리로, 그 동네를 찾아가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박을 터뜨릴 법 하다. 하지만 그곳 사주리(泗州里)는 ‘물 이름 사(泗)’자를 쓰는 것으로 미뤄 마을 앞을 흐르는 사천천에서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근처에 항공산업단지가 위치해 있으며, 그곳의 자연마을인 소둠벙 거리에는 양반이 되고 싶었던 백정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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