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반어법
108.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반어법
  • 미디어붓
  • 승인 2021.05.1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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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가는 길. 미디어붓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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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강원 인제군 기린면)

‘서리’는 0℃ 이하의 온도에서 공기 중의 수증기가 땅에 접촉하여 얼어붙은 매우 작은 얼음을 뜻한다. 따라서 서리가 내리면 지상에 남아있던 농작물은 모두 고사(枯死)한다. 농작물의 세포막이나 엽록체의 막이 경화되거나 파괴되어 세포가 말라 죽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리는 무섭다. 생명체의 수명을 끊어놓기 때문이다. 초봄에 녹차 밭에 서리가 내리면 최고의 차라고 불리는 우전 차 수확은 포기해야 한다. 배꽃이 서리를 만나면 배 농사는 끝이다. 채소가 서리를 맞으면 뜨거운 물을 부어 놓은 듯 잎이 폭삭 녹아버린다.

‘서리’는 식량 사정이 좋지 않던 시기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또는 재미 삼아 남의 곡식이나 과일을 훔쳐 먹거나, 심지어 닭 등을 몰래 잡아먹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전엔 청소년들에게만 관용되던 장난으로, 어른들이 모른 체 해주던 넉넉한 인심이 담겨 있다. 참외나 수박을 서리 맞지 않기 위해 원두막을 지어놓고 밤새 농부와 10대 악동들의 숨바꼭질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두(園頭)라는 말은 원래 참외, 오이, 수박, 호박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 중에서도 수박이나 참외, 딸기는 현장에서 따먹기 쉬워 원두막을 짓고 지켜야 했다. 하지만 남의 콩밭이나 옥수수밭에 들어가 서리해 온 콩과 옥수수를 불에 그슬려 먹던 것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됐다. 하나의 놀이문화로 용인됐던 서리도 이젠 도둑질(절도죄)이다.

우리 지명 중에는 서릿발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농작물이나 가금류(家禽類)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서리’라는 마을이 유독 많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서리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경남 하동군 적량면 서리, 경남 창녕군 영산면 서리(西里)는 마을 서쪽에 있어 붙은 지명이다. 충남 천안시 목천읍 서리(書里)는 글을 배우는 서당골에서 유래한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서리(西里)는 서촌(西村) 마을의 서(西) 자를 취하여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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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꽃이 산을 넘고, 강이 세월을 뛰어넘는 강원도 두메산골, 98세 할아버지와 89세 할머니의 명랑한 순애보를 그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화제였다. 14세 촌색시와 23세 떠꺼머리총각은 80여 년 전에 만나 아름답게 백년해로한다. 봄엔 꽃놀이를 하며 ‘나 이쁘오?’라고 애교를 떨고, 여름엔 물장난을 친다. 가을엔 낙엽을 쓸다 말고 서로를 쓰다듬고, 겨울엔 눈싸움을 하며 티격태격한다. 할머니 손이 시리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호호~’하고 입김을 불어주기도 한다. 둘은 어디를 가든 고운 빛깔의 한복을 커플로 맞춰 입고 다닌다. 그것도 두 손을 꼬옥 잡고서. 사랑을 막 시작한 청춘 커플보다 뜨거웠다.

서릿발 내린 백발의 늙은 사랑이 왜 사람들을 울렸을까. 그만큼, 사랑하며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할머니의 살결이 닿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버릇은 변주와 파격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이었다. 시큰거리는 무릎을 연신 주무르는 건 봉사가 아니라 위로다. 밭은기침 하는 남편을 밤샘 간호하는 건 고행이 아니라 동행이다. 귀가 어두운 남편을 위해 바짝 다가가 얘기하는 건 동감이 아니라 감동이다. 차려준 밥상을 놓고 ‘맛이 없다’고 투정하지 않은 건 선행이 아니라 배려다. 그래서 곱디곱다.

계절이 가고 오듯이, 꽃이 피고 지듯이, 누군가는 왔다가 떠난다. 그리고 그 떠난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온다. 부모의 늙어감에도 울지 않는 이 척박한 세상에, 우린 생판 알지도 못하는 촌로(村老)의 생사에 눈물 흘리고 있다. 묵은 눈물이자 ‘씻김굿’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남보다도 더 남같이’ 사는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누가 죽음 앞에 경박할 수 있는가. 그 누가 혁명군처럼 몰아닥치는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가. ‘죽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하는 건 ‘살고 싶다’라는 반어법이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애원이다.

강을 건너가려는 임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그 임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강이란 죽음과 이별이다. 건너면 죽음이고, 바라보면 그냥 물이다. 그러니까 강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징검다리다. 삶이여, 순순히 어두운 그림자를 받아들이지 마라. 늙음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라.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사라져가는 빛들에 대해서도 따져 물어라. 그래야 덜 늙는다. 지금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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