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126.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미디어붓
  • 승인 2021.08.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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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시간을 버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아하게 잃는 일이다. 마음대로 사는 데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아무리 안 좋아도 최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생이랑 엿이랑 바꿔 먹는 일이 와도 내 마음대로 살다가 그렇게 되면 최악은 아니다. 진짜 최악은 내 마음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되는 일이다.

세상엔 두 부류가 있다. 좋은 놈(분)과 나쁜 놈이다. 사실상 중간치란 없다. 본디 성정(性情)이 안 좋은데 좋은 척 하는 놈도 나쁜 놈이다.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놈도 나쁜 놈이다. 공짜 밥을 주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는 놈도 나쁜 놈이고, 공짜 밥을 당연하듯 얻어먹는 놈도 나쁜 놈이다. 적당히 좋은 놈, 적당히 나쁜 놈이란 없다. 간혹 선악의 강도에 따라 ‘별로’인 놈을 ‘좋은’ 쪽에 붙여주기도 하는데 이 또한 나쁜 놈이 하는 전횡이다.

여행 중에도 두 종류의 종족을 만난다. 나쁜 놈과 좋은 놈(분)이다. 비율은 거의 반반인데, 그래도 좋은 쪽이 조금 더 많다. 여행이 고행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여러 가지 변수 때문이다. 어쩌면 변칙(變則), 반칙(反則)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너무 많은 포식자들이 설쳐대며 먹잇감을 찾아다닌다. 이런 포식자들에게 잡히면 여행은 지옥이 된다. 낯선 타지에서의 린치는 가벼워도 상처가 되고 악몽이 된다. 선악의 인간들 사이에서 친절과 불친절의 경계(예후)는 명징하다.

여행 중에 오토바이 의자 자물쇠가 잠겨 충남 예산 어느 수리 센터에 들렀다. 수리공(修理工)은 다짜고짜 빠루(노루발못뽑이: 굵고 큰 못을 뽑을 때 쓰는 연장)를 들고 나와 의자를 들쑤셔대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도 기술이 없어보였다. 자물쇠는 무력(武力)에 의해 가까스로 열렸다. 비용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5만원을 내란다. ‘빠루질’ 몇 번 해놓고 5만원이라니 날강도가 따로 없다.

결국 호주머니에 있던 현금 2만9000원을 탁탁 털어줬다. 양아치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내기 취급을 받은 것도 억울하고 헛돈을 쓴 것도 억울했다. 그는 마을을 알리는 홍보대사가 아니라 악독한 장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생판 모르는 자에게 당한 불친절은 마을 전체 이미지에 적개심을 품게 했다. 한사람의 언행이 마을의 얼굴이 된다는 건 무서운 족적이다. ‘당신이 부산입니다’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지방정부의 묘책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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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라한 시장에서 마늘과 파를 공짜로 쥐어주던 경남 진주의 착한 상인, 엔진오일을 갈아주며 오토바이 전체를 세심하게 살펴주던 충남 보령의 어느 오토바이 가게의 주인장, 민박 독채를 저렴하게 빌려주던 부산 기장의 마음씨 좋은 집주인, 고기를 듬뿍 담아 나그네의 여독을 달래주던 전북 군산의 순대 국밥집과 미제 담요를 에누리 많이 해서 판매한 군산 양키시장의 상인….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다. 마음에도 질료(Matter·質料)가 있다. 난데없이 어둠에 둘러싸였을 때의 어둠은 숨이 막힐 듯한 공포다. 가령 견공(犬公) 주인들이 들으면 듣기 싫은 말이겠지만, 가족을 등한시 하면서 개를 위한 삶은, 반려가 아니라 개차반에 해당된다.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격적인 개체로 대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개를 사람처럼 대접해야 하는 건 아니다. 뒷방에 처박혀 사는 부모는 안 챙기면서 개가 감기 들까 노심초사 하는 건 이율배반이다. 물론 개만도 못한 인간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다.

종교를 마치 면죄(免罪)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같은 예다. 일부 종교인들을 보면 빛(光)은 없고 광(狂)만 남아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 추악한 사람을 피해가기가 어려운 일이고 그 사람과의 악연이 어려우며, 잘못된 인연으로 후회하지 않기가 제일 어렵다.

신문사 회장이란 직책을 달고 기자들에게 펜(정론직필) 대신 앵벌이(광고벌이)를 강요하고, 승진을 미끼로 때론 골프채나 여행을 미끼로 돈벌이(수익사업이나 매출 증대)만 시키는 양아치가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이치와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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