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상왕’이 있었기에 성공했던 세종‘대왕’
127. ‘상왕’이 있었기에 성공했던 세종‘대왕’
  • 미디어붓
  • 승인 2021.08.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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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상왕마을. 미디어붓DB
익산 상왕마을. 미디어붓DB

1423년 봄, 조선의 고을에 가뭄이 닥치자 이재민과 아사자가 속출했다. 세종은 자책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다. 내가 죽인 것이야.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다.”

자연재해가 잦았던 당시, 세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비판의 소리에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그는 직언하기를 당부했고, 일단 재해가 발생하면 온 마음을 기울여 대책을 세웠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사람의 힘’에 따라 대처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종의 리더십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악역’을 맡았기에 가능했다. “천하의 모든 악명은 이 아비가 짊어지고 갈 것이니, 주상은 만세에 성군의 이름을 남기시오.” 이방원은 권력의 곁불을 쬐며 알짱거리는 처남 네 사람에게 사약을 내렸고, 세종의 장인인 심 온(沈溫) 또한 스스로 자결하게 했다. 심지어 평생 동지 이숙번을 귀양 보내면서 ‘내가 죽은 지 100년이 되어도 도성의 땅을 밟지 못하게 하라’고 단호하게 명했다. 책임 있는 사람, 책임질 그 누군가가 있어야 후대가 평안해짐을 알았던 것이다.

1781년, 규장각 제학(提學·차관급) 김종수가 정조의 태도를 지적한 6개 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작은 일에 너무 신경 쓰시면 큰일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눈앞의 일에만 신경을 쓰는 건 겉치레입니다.” 정조는 김종수의 지적에 대해 “작은 것을 잘해야 큰 것도 잘할 수 있는 법이다. 과인은 작은 것을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국정관을 이해시켰다. 임금에게 대놓고 ‘지적질’ 한 김종수도 놀랍지만 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당당하게 ‘적시’했던 정조의 담대함이 더 놀랍다.

계급 지명

상왕마을(전북 익산시)

‘상왕(上王)’은 현 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 왕이 생존해 있는 경우 부르는 호칭이다. 하지만 절대 권력자인 왕은 원래 한 명만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다. 두 명의 왕이 존재하면 권력과 국론이 양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은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땅에는 두 명의 왕이 있을 수 없다(天無二日 土無二王)’하여 왕의 독존(獨尊)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언제나 그러한 원칙대로 운영될 수 없었기에 상왕의 지나친 간섭이나 왕대비나 대왕대비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경계했다. 실제, 상왕이 존재할 경우 신료들은 두 왕 사이에서 처신하기 힘들었다. 상왕으로 밀려난 왕도 신명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왕은 자의든 타의든 현왕의 견제를 받아야 했고, 약간의 정치적 언동은 바로 복위 기도로 간주되기도 했다.

‘대군(大君)’은 조선 시대 임금의 정궁(正宮) 몸에서 태어난 아들을 뜻한다. 자연히 왕의 형·동생을 부르는 말이다. 조선 시대 대군들은 형·동생이 왕이 되면 궁궐로부터 멀리 떠나 비켜서 주었다. 효령대군은 동생 충녕(세종대왕)이 세자로 책봉되자 스님이 되어 세상을 등졌다. 큰형 양녕대군도 한양을 떠나 전국을 떠돌며 허허실실 한량으로 살았다.

현대사에도 대통령을 둘러싼 친·인척들이 ‘상왕 노릇’을 해서 문제가 많았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를 일컫는 ‘봉하대군’,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지칭하는 ‘영일대군’(이 전 의원을 빗대 萬事兄通: 만사는 형으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여기에 MB의 정신적 멘토로 지칭되던 김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칭하는 ‘방통대군’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동생(전경환)과 처삼촌(이규광), 사돈(장영자·이철희), 처남(이창석)이 비리를 저질렀다. 노태우 정권에서는 ‘6공 황태자’로 불리던 고종사촌 처남(박철언)이 말썽이었다. 김영삼 정권은 금융실명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부정축재자 전두환·노태우 구속 등의 치적을 남겼지만 소통령(小統領)으로 행세한 차남(김현철)의 부정축재가 문제였다. 김대중 정권은 홍삼 트리오라 불린 그의 세 아들(홍일·홍업·홍걸)이 스캔들로 속을 썩였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권력에 줄을 대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도 문제고, 그런 사람을 이용해 조자룡 헌 칼 쓰듯 칼을 휘두른 혈족이 문제다. 그들만 유독 땅에서도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열흘 붉은 꽃은 없다. 권력이나 부귀영화도 그렇다. 세상 이치의 기본이 되는 원리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누구나 낙화(洛花)한다.

전북 익산시 팔봉동의 자연마을 중에는 상왕리(上旺里)가 있다. 윗마을이 상왕, 그 중간에 중왕, 그 아래에 하왕리가 있고, 새로 생긴 신왕리도 있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도 왕골, 상왕, 중왕, 화왕리란 마을이 있다. 왕은 세력이나 기운이 왕성하다는 의미의 ‘성할 왕(旺)’자를 쓴다. 충남 공주시에도 왕골의 위쪽 구석에 있어 상왕이라, 아래쪽에 있어 하왕리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행정동인 옥룡동(玉龍洞) 관할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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