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간신과 충신이 살아가는 법
128. 간신과 충신이 살아가는 법
  • 미디어붓
  • 승인 2021.08.24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광 신하리 가는 길. 미디어붓DB
영광 신하리 가는 길. 미디어붓DB

12세에 왕위에 올랐던 단종과 생사를 함께 한 12인이 있다.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이다. 쿠데타를 통해 왕에 등극한 세조(수양대군)에 반대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는 죽음으로 항거했다. 죽음을 앞둔 성삼문은 시(詩)로 울었다. ‘둥둥 울리는 저 북소리 내 목숨을 재촉하고, 황천 가는 길에는 주막도 없다던데 오늘 밤은 누구네 집에서 쉬어 갈 것인가.’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팔을 잘라내는 잔학한 고문에도 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리’라 불렀다.

생육신은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혹은 권절)이다. 사육신이 절개로 생명을 바쳤다면 생육신은 살아 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 체하고, 두문불출하며 단종을 추모했다. 죽은 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산 자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을 터. ‘하나의 태양 아래서 두 명의 왕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파 신하들이 미쁘다.

단종을 죽이고 세조가 정권을 잡았을 때 이계전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정란 1등 공신이 되어 전지 200결과 노비 25구를 받았고, 한성군에 책봉됐다. 그런데 1455년에 단종복위 음모가 발각됐다. 이계전은 세조 편에 섰지만, 조카 이개는 사육신에 포함돼 처형됐다. 이개의 땅은 이계전이 차지했다. 조카의 땅을 삼촌이 가진 것이다.

어느 날 사정전에서 잔치가 열렸는데 이계전은 세조에게 ‘술이 과하니 그만 들어가시라’고 했다가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내려가 곤장을 맞았다. 그러나 세조는 이계전을 다시 불러 춤을 추면서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고 은전을 베풀었다. 세조는 중신들이 연좌제를 적용해 ‘간신’ 이계전을 죽이자는 것도 억누르고 죽을 때까지 특별대우를 했다.

당 태종이 포주란 고을에 행차했다. 포주 원님 조원해는 그 고장의 원로급 노인들에게 황색 비단옷을 몸에 걸치게 한 뒤 태종을 배알하게 했다. 관청의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토성들을 손질하는 등 태종의 눈에 들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남모르게 양(羊) 100여 마리와 물고기 수천 수를 길러두고 왕족들에게 선물로 바치려고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당 태종은 “짐은 이 고을에 오면서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모두 왕궁의 것으로 충당했다. 그런데 그대는 양을 먹이고 물고기를 기르며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것이야말로 멸망한 수나라의 잘못된 풍습을 따른 것”이라며 나무랐다. 이에 ‘간신’ 조원해는 식음을 전폐하다가 아부할 수 없는 저세상으로 떠났다.

중국 전한 시대에도 공직자 지침이 있었다. 바른 신하와 나쁜 신하를 구분한 ‘육정육사(六正六邪)’가 그것이다. 바른 신하로는 앞일을 헤아려 군주에게 선정을 베풀도록 하는 성신(聖臣),옳은 길로 가도록 보필하는 양신(良臣),어진 사람을 적극 추천하는 충신(忠臣),일을 잘 처리해 군주를 편안하게 하는 지신(智臣),원칙을 존중하고 검소한 정신(貞臣),잘못을 거침없이 지적하는 직신(直臣)을 들었다. 반면 녹을 탐하고 지위에 안주하는 구신(具臣),아첨을 일삼는 유신(諛臣),겉과 속이 달라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간신(奸臣),남을 참소해 분열을 일으키는 참신(讒臣),개인적 이익만 추구하는 적신(賊臣),군주의 혜안을 가려 나라를 망치는 망국신(亡國臣)은 나쁜 신하의 범주에 넣었다. 2000여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요즘 들어도 그른 게 하나 없다.

“내가 누구를 닮아가고 있듯이 너희들도 누구를 닮아가야 한다. 내가 불면에 시달릴 때 너희들은 가슴 속에 모닥불을 피우고. 신하여! 너희들은 울부짖어야 한다. 날카롭게, 날카롭게 흐느껴야 한다. 구멍 뚫린 역사의 도마 위에 앉아.”

독재정권을 비판하며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저항시를 주로 써 온 양성우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신하여, 신하여’의 한 대목이다. 그는 현실의 모순에 결코 눈감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하면서 이 땅에 생동하고 있는 민중의 건강한 정서를 시로 형상화하는 데 노력해온 시인이기도 하다

우리 속담에 ‘신랑 마두에 발괄한다’는 말이 있다. 신랑을 높은 벼슬아치로 착각하여 신랑이 탄 말의 머리에 대고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다는 뜻으로, 경우에 어긋나는 망측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탐관의 밑은 안반(安盤) 같고 염관의 밑은 송곳 같다’는 비유도 있다. 탐관은 엉덩이에 살이 쪄서 엉덩이가 안반 같고 청렴한 관리는 엉덩이에 살이 빠져 송곳 같다는 뜻이다. 탐관은 재산을 모으고 청렴한 벼슬아치는 가난하게 지낸다는 말과 달리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정치인이 많으니 씁쓸할 따름이다.

신하리(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우리 지명에는 상왕마을이 있는 반면, 신하리도 있다. 경기도 가평군 조정면 신하리(新下里)는 예전에 개간이 되지 않았을 때의 들녘이 억새와 버들로 온통 뒤덮여 있어 그곳에서 새를 베어다 집을 지었다고 해서 새버덩이라고 불렀는데, 새버덩의 새를 ‘새 신(新)’자로 바꿔 윗마을을 신상(新上), 아랫마을을 신하리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신하리(新河里)는 신촌과 복하라는 마을이 병합되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경북 의성군 단북면 신하리(新下里)는 위천의 범람을 피해 아래에 새롭게 개척한 마을이고, 전남 영광군 영광읍 신하리(新河里)는 신기(新基)와 하라(河羅)를 병합해 부르게 됐다고 한다.

‘구닥다리 머슴론’이 있다.

①주인은 스스로 일하고 머슴은 누가 봐야 일한다. ②주인은 미래를 보고 머슴은 오늘 하루를 본다. ③주인은 소신 있게 일을 하고 머슴은 남의 눈치를 본다. ④주인은 바득바득 일하고 머슴은 탱자탱자 논다. 요즘 세태로 보면 ①②③④번 모두 틀렸다.

MB정부는 초창기 ‘머슴론’을 펴며 국민에게 봉사하라고 했다. 대통령 스스로도 ‘상머슴’이라 지칭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민이 머슴이었다. 대통령 곁에 쟁신칠인(諍臣七人)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 가라사대 ‘바른말로 충언하는 신하 일곱만 있으면 천하를 잃지 않는다’고 했는데, 머슴은 일하고 신하들은 싸움질만 했다. 하인을 자처하던 정치권이 주인행세를 하니 을(乙)은 매양 을이었고, 주인의식 없는 갑(甲)은 해가 바뀌어도 ‘을’을 하인처럼 부려먹었다.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 뜯어말려도 못 말리는 부류가 있다. 누구일까? ①정치하는 사람 ②열애에 빠진 사람 ③노름에 빠진 사람. 정답은 ①②③번 모두다. 이중 가장 중증(重症)은 누구일까? ①번 정치꾼이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 패가망신 직전까지 발을 못 뺀다.

세시풍속 중에 ‘머슴 날’이란 게 있었다. 음력 이월 초하루가 그날인데 노비일, 아드렛날이라고도 불렀다. 봄기운이 완연해 농사채비를 시작하고 논밭을 처음 가는 시기다. 이날만큼은 주인이 머슴에게 새 옷과 음식을 내주며 상전처럼 모셨다. 머슴들은 풍악을 울리며 집마다 곡식을 얻는 걸립(乞粒)을 행했다. 또 정월 보름에 세웠던 볏가릿대에서 벼 이삭을 내려 흰떡을 만들고, 콩으로 만든 송편을 나이 개수대로 먹었다.

충청도에서는 가장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소(牛) 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았다. 일 년 열두 달 쉼 없이 일하는 머슴들이 단 하루만이라도 허리띠를 풀어놓고 흥겹게 놀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올해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모종의 강압이 숨어 있었다.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봉필이는 처량한 머슴살이의 전형이다. 새경(私耕)은 주인의 뜻에 달려있어 연봉으로 받거나, 현물로 받거나, 외상으로 깠다. 어떤 악덕 주인은 새경이 아까워 공짜 머슴살이를 하면 딸을 주겠노라고 약조해놓고는 차일피일 미루다 총각 귀신을 만들곤 했다. 이러니 평생 혀 빠지게 꼴머슴 중머슴 노릇만 하고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많았다. 고려 시대 용작, 조선 시대 고공이라 불렸던 머슴의 역사는 이처럼 박복하고 비루하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끼니때가 되어도 거저 밥술 주는 사람은 없다. 놀부 마누라 같은 주인이 밥풀때기 붙은 주걱으로 낯짝을 쳐주면 좋으련만, 그런 불쾌한 특전도 없다. 일을 않고는 죽도 밥도 없음이라. 그래서 갑(甲)은 놀부이고 을(乙)은 평생 을의 팔자를 탓하며 흥부로 산다.


  • 세종특별자치시 마음로 14 (가락마을6단지) 상가 1층 3호 리더스
  • 대표전화 : 044-863-3111
  • 팩스 : 044-863-3110
  • 편집국장·청소년보호책임자 : 나재필
  • 법인명 : 주식회사 미디어붓
  • 제호 : 미디어 붓 mediaboot
  •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5
  • 등록일 : 2018년 11월1일
  • 발행일 : 2018년 12월3일
  • 발행·편집인 : 미디어붓 대표이사 나인문
  • 미디어 붓 mediaboot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미디어 붓 mediaboot.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ediaboot@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