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생긴 상처가 더한 법
130.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생긴 상처가 더한 법
  • 미디어붓
  • 승인 2021.08.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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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선장마을 가는 길. 미디어붓DB
하동 선장마을 가는 길. 미디어붓DB

선장마을(경남 양산시 원동면)

“비에 젖은 바다일지라도 부디 그들을 잊지 말자. 꽃다운 아이들, 그 절명의 푸르른 꿈들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지만 그들을 기억하자. 먹먹한 가슴, 우리의 가슴도 잠겼다. 우리의 믿음도 잠겼다. 바다도, 어른도, 나라도 목 놓아 통곡한다.”

육친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천붕지통·天崩之痛)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게 자식을 잃는 단장지애(斷腸之哀: 창자가 끊어짐)다. 부모 주검은 땅에 묻고 자식의 주검은 가슴에 묻는다. 하지만, 묻고 또 묻은들 ‘참척(慘慽·참혹한 근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산 자도 죽이는 아픔, 그 슬픔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소설가 박완서는 남편을 잃은 지 석 달 만에 스물다섯 외아들을 또 잃었다. 그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며 20일 동안이나 하나님에게 따졌다.

“왜, 무엇 때문에 데려가셨소.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준단 말이오. 아이를 점지해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허락 없이 빼앗는 것이오.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이오? 사랑 그 자체라는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소.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요.”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괴로움을 펜으로 적셨으나, 그 눈물은 죽는 날까지 마르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그 바다, 맹골수도(孟骨水道)는 맹수처럼 거칠고 사납다. 그 저편, 파류(波流)가 소용돌이치는 울돌목 명량에서 이순신은 울부짖었다. 아들을 잃고 쓴 난중일기를 보면 ‘통곡(慟哭)’ 외엔 벼를 것이 없다.

“간담이 떨려 목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이다지도 어질지 못한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천지가 어둡고 저 태양이 빛을 잃는구나! 슬프다, 내 어린 자식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상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났는데 하늘이 너를 머물게 하지 않는가? 밤 지내기가 1년처럼 길구나.”

이다. 게다가 아문 듯했다가도 수시로 도져 가슴을 후벼 파는 게 사별이다. 내가 만든 상처도 견디기 힘든데 하물며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얻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3년 동안 봄이 오지 않는, 차가운 바다에 갇혔던 세월호 청춘들은 선장(船長)이 죽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이끄는 선장(船長)이 또 한 번 죽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워야 할 청춘들을 바다에 묻고, 가슴에 묻어도 참척(慘慽)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배를 통솔했던 최고책임자도, 나라를 통솔했던 최고책임자도 말이 없다. 사과가 없다. 국민 모두가 상주(喪主)가 되어 수천(水天)을 떠도는 가여운 혼백들을 달래보지만, 정작 우리들도 가해자다. 나들이 한번 마음 놓고 할 수 없게 만든 공공의 가해자다.

깊은 물 속 캄캄한 선실 안에 갇혀 ‘엄마, 내가 나중에 말 못할까봐 그러는데, 정말 사랑해요’라고 쓴 카톡 속의 목소리가 가슴을 친다. 우리는 지금 생몰의 카운터를 세며 지옥의 묵시록을 써가고 있다. 통렬한 반성이다.

경남 양산시 원동면 선장마을은 마도로스(matroos)의 꽃, 선장과는 무관한 지명으로 ‘신선이 하강한 곳’이라는 전설에 따라 선장(仙庄)마을이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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