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좌천으로 돌아 물길이 흐르는 보금자리
131. 좌천으로 돌아 물길이 흐르는 보금자리
  • 미디어붓
  • 승인 2021.08.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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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고하리 가는 길. 미디어붓DB
하동 고하리 가는 길. 미디어붓DB

고하리(경북 안동시 남후면)

‘서기보-서기-주사보-주사-사무관-서기관-부이사관-이사관-관리관’

‘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

‘소방사-소방교-소방장-소방위-소방경-소방령-소방정-소방준감-소방감-소방정감-소방총감.’

사회생활을 하는 개개인은 누구나 일정한 사회집단에 속하며, 그 속에서 일정한 규제를 받으면서 행동한다. 또 개개인의 지위에 따라 역할이 부여되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가 대가가 수반된다. 때론 연령에 상관없이 지위고하가 정해지기도 한다. 예컨대. 지금은 폐지됐지만, 사법고시 등 특정 고시에 합격하면 지위를 뛰어넘는다. 예컨대 경찰대학을 나오면 순경, 경장, 경사를 거치지 않고 경위로 발을 내딛게 되고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곧바로 5급인 사무관을 보장받는다. 빈부나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과 재능이 있어 그러한 영예를 차지한 경우 ‘개천에서 용 난다’는 자조 섞인 위무를 하던 것도 경계를 뛰어넘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기에 지칭됐다.

경북 안동시 남후면 고하리는 그런 의미에서 상하 관계나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모두가 어울려 사는 동네라는 인상을 풍긴다. 고하리(古下里)는 마을 뒤로 낮은 산이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하고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아릇고일(하고곡), 갈골(갈곡), 덕골(덕곡), 새터(신기), 죽리, 헷골(회곡) 등이 있다. 고일은 고상리와 고하리에 걸쳐 있는 마을인데, 아릇고일은 고일 아래쪽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후에 고하리가 됐다.

경남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古下里)는 들녘이 넓게 펼쳐진 농촌지역이며, 소여곡소류지, 양경산소류지, 곡계소류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해평, 죽전, 구하동마을 등이 있다. 해평(海坪)마을은 예전에 이곳이 바닷가였다고 하여 지어진 명칭이다. 죽전(竹田)마을은 대나무가 무성하다 하여, 구하동(舊河洞)마을은 옛 하동 군청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기장 좌천리 이정표. 미디어붓DB
기장 좌천리 이정표. 미디어붓DB

좌천리(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밀양시 단장면 표충사엔 효봉스님 사리탑이 있다. 효봉스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였다. 그가 세속의 번뇌를 씻고 스스로 머리를 깎은 것은 고결한 양심 때문이었다. 어느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나서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이는 것’에 회의를 느껴 법모를 벗고 38살에 늦깎이 중이 된 것이다. 스님은 한 평짜리 흙집을 짓고 들어가 면벽 수행 뒤 2년 4개월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 어찌나 엄격하게 정진했는지, 한번 앉으면 절구통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절구통 수좌’라 불렸다. 스님은 바보였기 때문에 판사직을 버린 것이 아니라,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화려한 입신(立身)의 길을 버린 것이다.

붓을 든 선비가 칼을 든 무반들을 500년 동안이나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상소’라는 소통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오만과 우매함을 깨우치기 위해서 조선의 신하들은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한 예가 지부복궐상소(指斧伏闕上疏)인데 도끼를 몸에 품고 궐문 앞에 꿇어앉아 자신의 상소를 듣지 않겠다면 도끼로 죽여 달라고 한 것이다. 상소문 한 장과 목숨을 바꾸겠다는 장렬함의 극치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과 구한말의 최익현이 ‘도끼 상소’를 한 위인이다. 율곡 이이 또한 550편의 상소를 올렸는데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연산군 때 내시(內侍) 김처선은 “이 늙은 신하는 네 명의 임금을 섬겼지만, 이토록 문란한 군왕은 없었다”며 쓴소리를 했다. 격노한 연산군은 직접 그의 다리와 혀를 잘랐지만, 김처선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상소한 이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바보는 그들을 말리며 간언한 무리들이다.

좌천(左遷)은 벼슬이나 직책, 처우 등이 못한 데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전출될 때도 비유하며,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중국에서 한때 오른쪽을 중시(重視)한 데서 온 말이라고 한다. 지위가 낮게 떨어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부정부패나 각종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발각될 경우 내려지는 일종의 죗값인 셈이다.

공무원들이 명령 위반, 직무상 위반, 직무 태만 등으로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받는 파면·해임·정직·감봉·견책 등의 징계를 내리는 것도 그와 유사한 벌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 직급을 1계급 아래로 내리고 공무원 신분은 보유하나 3개월간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한 뒤 그 기간 중 보수를 전액 감하는 강등도 중징계에 해당하는 무거운 벌이다. 예전에 미운털이 박힌 공무원을 산간벽지(山間僻地)나 오지(奧地)로 발령 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佐川里)는 그러한 불명예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좌천리는 바다에 가까이 있는 해안지역에 있다. 좌천이란 이름은 달음산 줄기를 타고 정관읍에서 좌천으로 돌아 흐르므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라는 것을 알고 ‘도울 좌, 내 천’의 뜻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성내의 옛말인 ‘잣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좌’ 또는 ‘자’는 성(城)을 뜻하는 고어인 ‘잣’이 변형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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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토바이 전국 기행 중에 불필요한 짐을 집으로 부치기 위해 찾은 좌천우체국 여직원의 친절한 미소와 상냥한 말씨는 ‘좌천’이란 어감이 주는 불편함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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