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앞길이 '구만리'가 아니라 지형이 굽었네
137. 앞길이 '구만리'가 아니라 지형이 굽었네
  • 미디어붓
  • 승인 2021.08.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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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구만리 이정표. 미디어붓DB
예산 구만리 이정표. 미디어붓DB

구만리(충남 예산군 고덕면)

‘앞길이 구만리’라는 말은 나이가 젊어서 앞길이 창창하거나, 아직도 남은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의미로 쓴다. 1리(里)는 약 0.39272㎞, 9만 리는 3억 5345만 4545㎞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가 4만㎞이니, 얼마나 먼 거리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구만리의 유래는 중국 천지창조 신화 중 하나인 반고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고신화에 의하면 태초는 하늘과 땅이 한데 섞인 어두운 알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 알 속에서 잠을 자던 거인 ‘반고’가 도끼로 알을 깨고 나오면서 하늘과 땅이 생겨났다. 알 속에 들어있던 물질 중 가벼운 것은 위로, 무거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하늘과 땅이 된 것이다. 반고는 하늘과 땅이 다시 붙지 않도록 하늘과 땅을 받쳐 들었는데, 반고의 키가 날마다 1장(3.03m)씩 자라나 하늘과 땅은 나날이 멀어지게 됐다. 반고는 무려 1만 8000년 동안 하늘과 땅을 받치고 있었다. 이렇게 떨어진 하늘과 땅의 거리가 바로 9만 리다.

이 때문에 아득히 높고 먼 하늘을 뜻하는 ‘구공(九空)’,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 ‘구만장천(九萬長天)’ 등의 말이 생겨났고, 아득하게 먼 거리를 뜻하는 말로 ‘구만리(九萬里)’를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구만리(九萬里)는 지형이 구미(후미) 안쪽이 되므로 굼안, 구만이라 한데서 유래됐다. 포리, 황금리, 천변리를 병합해 고덕면에 편입됐다. 자연마을로는 구만, 내갓말, 새태구만이마을 등이 있다. 내갓말마을은 내가 흐르는 바로 옆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새태구만이마을은 구만이 동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전북 완주 봉동읍 구만리는 북으로 만경강이 흐르고 동부는 낮은 산지, 서부는 평야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뒷산의 지형이 활처럼 굽어, 물굽이 안쪽으로 돌아 흘러서 본래는 궁만(弓灣)이라 불렸다. 경북 포항 호미곶면에 있는 구만리는 지형이 동해 가운데로 뻗어 들어가서 굽이를 이뤘으므로 구만리라 했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 구만(九彎)은 약 600년경 삭녕최씨가 동쪽들(비련)에 정착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됐는데, 서시천 상류의 물굽이 중 9번째 굽이에 마을이 위치했다고 해서 지명이 생겼다.

강원도 홍천 북방면, 화천군 간동면, 전남 순천 서면에도 구만리가 있다.

화순 야사리 마을. 미디어붓DB
화순 야사리 마을. 미디어붓DB

야사리(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野沙里)의 자연마을로는 야사, 산사, 태평동, 용호, 갑동이 있다. 야사(野沙) 마을의 뜻은 ‘들모실’(들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한자화한 것이다. 야사 마을은 처음에는 평사(平沙)라 했고 이후 금사(錦沙)·사촌(沙村)·사천(沙川)이라 표기하다가 야사(野沙)로 정착됐다. 태평동은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름 붙여졌다. 갑동은 원래 마을 입구에 도구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한때 도구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갑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연원은 산 아래 가장자리에 있으므로 갓굴 또는 갓동이라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갑(甲) 자를 취하여 갑동이 된 것이다.

산사 마을은 ‘산모실’(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한자화하여 뫼 산(山)자와 모래 사(沙)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용호 마을은 원래 도롱굴(더렁이골)이라 부르는데 큰 바위가 이곳저곳에 많이 있다는 뜻이며, 한자로는 용호(龍湖)라고 하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용이 물을 먹으러 내려오는 형국이므로 이렇게 부른다고 전한다.

야사리(野沙里)는 무등산에서 발원한 영신천을 따라 형성된 자연촌락인데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500년경이라고 추정된다. 야사리에서는 약 800여 년의 전통을 이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올린다. 이 마을엔 두 그루의 당산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조선 성종 때 이곳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심은 것으로, 수령이 500년도 넘었다. 국운이 융성하면 나라의 화평을 알리고, 전란과 나라의 불운이 있을 때는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또 한 그루의 당산나무는 마을 안쪽에 있는 은행나무다. 원래는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모셨던 굉장히 큰 노거수 느티나무였는데 나무가 고사(枯死)하자 20여 년 전 그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어 당산나무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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