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인간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이다”
에필로그 “인간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이다”
  • 미디어붓
  • 승인 2021.08.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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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출발전 모습. 미디어붓DB
라이딩 출발전 모습. 미디어붓DB
여행노트
여행노트

여행은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결국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3000㎞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니 남는 건 숫자 ‘0’이었다. 여백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공백이었다. 텅 빔, 空, 그리고 다시 채워진 유(有)의 상태를 느꼈다. 가둬진 마음의 빗장을 조건 없이 걷어냈는데도 다시 무언가가 그 자리에 채워져 있었다.

결국 여행은 도착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닌, 도착할 것을 이미 알고 떠나는 것이었다. 많은 곳을 주유(周遊)했다. 짧은 일탈이었으나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변화는 소소한 일들에 감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밥’의 고마움을 알았고 ‘집’의 고마움을 알았다. ‘가족’의 고마움을 알았으며 ‘지금’이라는 시간에 대해 고마움을 알았다. 정말 견디기 힘들게 슬픈 일상에도 감사하고, 필요한 것들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우린 장구하지 않은 삶에 너무도 많은 것을 기대며 살고 있다. 멋지게 살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무언가를 탓하고 원망하면서 하루를 버리고 있다. 버리는 것과 버려지는 것은 다르다. 버리는 것은 능동(能動)이고 버려지는 것은 피동(被動)이다. 사람들은 버려지지 않기 위해 먼저 버리는 습성이 있다.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먼저 버리는 것이다. 그 삿된 버림은 기실 부질없는 짓이다. 하루를 하릴없이 버릴 바엔 차라리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낫다.

여행 후
여행 후 손이 시꺼멓게 그을려 있다.

누군가는 꿈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어느 한 편이 옳다고 손을 들어줄 수는 없으나 실패하는 일이 생길지언정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미쳐봤다는 것, 그거라면 후회는 없다. 우리는 멋진 여행자가 되길 희망한다. 여행이란 ‘발’로 가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새로운 풍경을 봤다는 안도가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됐다는 자극을 받아야 한다.

여행을 마치고 가족이 모였다.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자 웃음만 나왔다. 할 말이 아주 많았는데도 할 말이 없었다. 하고 싶었던 일들도 아주 많았는데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 달간의 부재(不在)가 주는 심리적 불안감은 이내 평화로움으로 바뀌었다. 지금 있는 곳이 천국이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천사다. 따스한 등불 아래서 소곤거리며 저녁 식사를 하는 ‘지금’이 행복이다.

기행문학가 브루스 채트윈(Bruce Chatwin)의 말이 오버랩 되는 어느 늦은 봄, 우린 조용히 외친다. “인간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이다.”

 

*미디어붓 독자여러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2019년 4월부터 2년 8개월에 걸쳐 140편에 달하는 본 연재물을 게재했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글로 다시 뵈올 것을 약속드리며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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