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사우]당신은 내시냐? 간신이냐?
[문방사우]당신은 내시냐? 간신이냐?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0.12.09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 전경. 연합뉴스
청와대 전경. 연합뉴스

내시(內侍)는 조선시대 궐내의 잡무를 맡아보던 내시부의 환관이다. 익히 알고 있듯 내시는 왕의 측근으로서 궐내에 상주해야하는 특수성 때문에 남근과 고환을 몽땅 들어내 남자구실을 원천 차단했다.

이 잔혹한 거세(去勢)는 대부분 호구지책이 많았다. 간혹 조정의 비밀정보망을 장악해 권력과 유착하려는 내시도 있었지만,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기 위해 거세하는 생존형이 주류를 이뤘다. 내시는 종2품의 품계까지 허용됐으나, 직접 정치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역사인물에서 가장 회자된 내시를 꼽으라면 김처선을 든다. 그는 ‘왕의 남자’로 살았지만 ‘왕의 역린’으로 사라졌다. 김처선의 고향은 지금의 세종시 전의면 동교리다. 그는 세종 때 어린 내시로 들어갔다. 이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까지 일곱 임금을 모셨다. 그만큼 왕의 신임이 두터웠다. 세조는 그를 원종공신 3등에, 성종은 자헌대부에 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들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그 총애를 권력화하지는 않았다.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직언했고, 음탕하면 그치라고 했다. 정사(政事)에 대한 직언(直言)이었고, 정도(正道)였다. 많은 고관대작들이 내시들을 돈으로 매수해 정치공작을 하는 게 다반사였던 시절이었으니, 어쩌면 눈밖에 날일을 한 것이다. 세조는 한때 비위를 맞추지 않는 그를 관노로 추방하기도 했고 급기야 연산군에 이르러서는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1504년 4월1일. 연일 처용무 춤판을 벌이며 여색을 좇던 연산군에게 김처선이 작심하고 아뢰었다. “전하, 역대 여러 임금님을 모셨습니다만 이토록 문란한 임금은 없었습니다. 제발 멈추소서.” 그러자 연산군은 ‘환관 주제에 혓바닥을 놀린다’며 활을 쏴 가슴을 찢고 다리를 잘랐다. 그의 양아들과 7촌 이내의 친척들도 모조리 처형됐으며 김처선의 고향 이름을 없애고 그의 집도 불태워 없앴다. 또한 자신이 즐겼던 ‘처용무’도 ‘풍두무’로 고쳤는가하면, 전국에 ‘처’자가 이름에 들어간 사람은 빠짐없이 개명하게 했다. 결국 그는 임금을 위해 바른 소리를 하다가 바르게 죽었다. 내시 김처선은 간신이 아니라 충신이었다.

그로부터 50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정부엔 김처선이 있는가? 내시가 있는가? 아니면 간신(姦臣)만 있는가? 모두들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멈추라’는 소리를 안한다. ‘역대 대통령을 모셨습니다만 이토록 정의로운 대통령은 없었다’고 읊조리기만 한다. 대통령은 그들에게 활을 쏘지 않는다. 직언하는 자가 없으니 간언(間言)하는 자가 차고 넘친다. 대통령이 간신들 뒤에 숨은 것인지, 간신들이 대통령 뒤에 숨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대통령은 임기만 채우고 떠나면 끝이다. 그 수하들도 임기만 채우면 끝이다. 그 뒤치다꺼리는 국민들 몫이다. 용비어천가는 현세(現世)에 부르는 게 아니다. 후세에 백성이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사람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예스맨이 아니라 쓴소리도 하고 민심의 목소리를 대변할 줄도 아는 비겁하지 않은 ‘노맨’이다. ‘NO’란 메시지에는 양쪽 방향을 보게 하는 균형의 묘가 들어 있다. ‘예스맨’들의 주장만 듣다간 방향감각을 잃어 텍스트에 숨어있는 행간을 읽지 못하게 된다. NO는 듣긴 싫어도 역사를 진보시키는 아름다운 언어다. YES는 듣기엔 달콤해도 종장엔 역사를 퇴보시키는 독설이다. 비판 없는 YES보다 용기 있는 NO가 조직을 살릴 수 있다. 권력의 칼은 겁나지만 비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노무현 탄핵에 ‘YES’를 외치다가 뒤늦게 삼보일배를 하며 ‘NO’라고 외친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충신인가. 그를 두고 법무부(法武部)장관, 법무부(法無部)장관, 검법부(檢法部)장관이라는 비아냥이 끊이질 않는다. 노무현을 탄핵했고, 그 탄핵을 사죄했으며, 박근혜 탄핵으로 인해, 다시 탄핵의 득을 얻은 사람 아닌가. 검찰개혁을 한답시고 권력남용을 하는 건 아닌지 묻는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사람을 ‘권력의 충견’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또 묻는다. 마지막으로 정권 비리를 공격하려는 맹견(猛犬)을 잡는 것이 충견의 도리인지 묻는다.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과 하원의원,두 번의 국방장관 등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의 충고가 귓전을 울린다.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는다고 생각할 만큼 직언 할 용기가 없다면 그 자리에 남아 있어선 안 된다. 비난받지 않으려고 말을 아낀다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 세종특별자치시 마음로 14 (가락마을6단지) 상가 1층 3호 리더스
  • 대표전화 : 044-863-3111
  • 팩스 : 044-863-3110
  • 편집국장·청소년보호책임자 : 나재필
  • 법인명 : 주식회사 미디어붓
  • 제호 : 미디어 붓 mediaboot
  •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5
  • 등록일 : 2018년 11월1일
  • 발행일 : 2018년 12월3일
  • 발행·편집인 : 미디어붓 대표이사 나인문
  • 미디어 붓 mediaboot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미디어 붓 mediaboot.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ediaboot@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