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했지만, 그리 괜찮지 않았던 날을 애도하며
괜찮다고 했지만, 그리 괜찮지 않았던 날을 애도하며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3.10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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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 짧은 소설 '이해한다는 것'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가 어느 순간 사라진, 이름을 얻지 못한 감정의 기원을 궁금해나는 스토리텔러가 돼 돌아왔다.

'이해한다는 것'은 윤슬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다. 유쾌함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날이 ‘괜찮아’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동시에 사라진 이름 없는 감정도 상당하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윤슬작가는 왜 ‘괜찮아’라고 말했는지, 왜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지 못했는지 원인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이번 작품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사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 채 사라진 이름 없는 감정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수수께끼처럼 얽혀 있는 상황과 감정을 재구성하고 재배열하여 이름을 붙여주고 고유함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한다.

도덕이나 정의가 아닌 이해와 확장을 모티브로 소개된 27편의 작품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의 이동을 유도하며 시간과 공간이 바뀌는 경험을 선사한다. 괜찮았다고 믿는, 그렇다고 믿고 싶은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에 대해 누군가는 대단하지 않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 괜찮지 않은 감정’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시간은 살아갈 날에게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그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윤슬작가의 시선이 깊고 따뜻하다.

소속감을 느끼면서도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마음, 뿌듯해하면서도 어딘가 미안해지는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 인생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과연 내 인생만 잘 살면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겨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인생이 자신과 통합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합의도 없이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감정은 도움의 손길일까, 방해꾼일까. 여러 질문이 한꺼번에 그녀를 찾아왔고, 줄다리기하듯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나들면서 윤슬작가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모두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든 스토리는 옳다. 스토리를 잘 만들어낸다는 것은 자신과의 불협화음을 줄이면서 정체성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 스텝도 필요하다. 각자의 스토리에서 저마다 주인공 역할을 차지하고 있지만 주인공만 있는 영화는 없다. 관계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이미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그들 모두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지금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이번에 참여한 조연, 스텝은 누구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통해 보편적이라고 믿고 있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보다 더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해한다는 것'에는 갑작스럽게 떠난 아내에게 밤새도록 불을 밝히는 것으로 용서를 구하는 남편, 끝까지 버티는 것 말고 한 번쯤은 그냥 해보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가장, 뒤늦게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대학에 입학한 아들, 반려견을 제대로 배웅하지 못한 아이, 내 편이라고 믿고 싶지만 내 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아내의 고백 등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진 이들이 다정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온다.

“이럴 때 있으셨죠?”
“이런 마음 생기지 않았나요?”
“어떠셨어요?”

'이해한다는 것'을 통해 윤슬작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사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 채 사라진 이름 없는 감정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애도와 위로의 시간을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외면했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고, 함께 보냈던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도덕이나 정의의 측면이 아닌 이해와 배려의 방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 마음이 복잡한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윤슬작가의 글에는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한층 느슨해지는 마음이 싫지 않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애써 규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게된다. 삶이 계속 흐르고 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서둘러 단정하고 줄을 그을 필요는 없다. 조금 더 흐르도록 둬도 큰 문제는 없다고 작가는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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