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물 가득한 계절, 그리움의 끝을 잡고서···
봄물 가득한 계절, 그리움의 끝을 잡고서···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4.2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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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 괴산군 제공
산막이옛길. 괴산군 제공

하루는 술을 마시고, 하루는 쉬고, 그 다음날 또 마시고 또 하루를 쉰다. 그렇게 윤회처럼 반복되는 술판은 이 봄의 정취와 맞물린 그리움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과는 멀어지고 그리움과는 가까워졌다. 옛것들이 그립고, 옛 시간들이 그립다. 동시에 산(山)과도 친해졌다. 사회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동시에 산과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진 것이다. 새벽 산은 음습하나 동시에 청명하다. 커가는 봄이 느껴진다. 연두의 잎들은 이미 광합성의 임계점을 뛰어넘어 수액을 잔뜩 머금고 있다. 더구나 크고 작은 꽃 사태를 보노라면 봄 처녀의 가슴처럼 그리움이 밀려든다. 이는 가파른 중턱을 오를 때의 날숨마냥 벅차다.

활새머리 모양의 풀숲과 폭을 줄인 산길에 갈바람이 더해지면 나목(裸木)들은 제각기 춤사위에 젖는다. 수취인 없는 잎들은 그리움 더미로 우부룩 쌓여 사색을 낳는다. 청답(靑踏)의 걸음걸음은 그래서 산객만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리움도 한데 모이면 억세어진다. 마치 수척한 억새처럼 말이다. 바람이 모여 만들어진 억새는 ‘억센 풀’에서 작명됐다. 억새와 갈대는 볏과에 속하는 초본식물이라 비슷하게 생겼다. 억새는 대부분 산과 들에 나고 갈대는 반수생식물이어서 습지나 강, 호수, 해변에 자란다.

억새 키는 1.2m 안팎으로 작고 갈대는 2~3m로 크다. 억새잎은 좁고 가운데에 흰 줄이 있는 반면 갈대 잎은 넓고 대나무 잎을 닮았다. 줄기도 갈대가 더 굵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지만 바람에 쉬이 흔들리는 것은 오히려 억새다.

억새와 갈대는 그리움의 정령들이다.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가슴 속 한편에 큰 돌이 내려앉아 억센 ‘대롱’이 된 것이다. 사람들 또한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리움의 근원을 좇는다. 그래서 고향을 찾고 옛것을 찾는다. 우리가 트로트에 열광하는 것도 어쩌면 그리움의 저변에 깔린 향수 때문일 것이다. ‘그립다’는 말은 연(戀)이다. ‘인연’을 거꾸로 읽으면 ‘연인’이 되듯 사람은 사무치게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존재다.

사라져버린 것들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것이 비단 음악 뿐이랴.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자취를 감춘 대장간, 전당포, 함진아비, 프로레슬링, 양장점, 서커스단, 뻥튀기, 음악다방도 흑백사진 속에 침잠해있고 성냥, 공중전화, 전축, LP판, 삐삐, 백열등, 연탄, 양조장, 쌀가게, 양장점, 이발관, 구판장, 방앗간, 여인숙, 빨래터, 우물가, 학교종도 사라졌다.

그리움의 꿈은 무력(無力)하다. 그리움은 억지로 사라지지 않는다. 간절히 원하면 꿈을 꾸게 된다지만, 그리워하는 것은 꿈에도 나타나지 않고 물외(物外)에 머문다. ‘이승의 여인숙’에서 잠시 꾸는 그리움의 허방은 항상 채워지지 않는 법이다. 어느 한 귀퉁이도 굻거나 넘침이 없는 평미레다.

우린 1%의 작은 행복을 위해 99%의 시간을 버리지 못한다. 그 시간이 죽을 것 같이 아깝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까운 시간에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멈춰서 있으면 줄서는 것만큼이나 화가 난다. 결국 1층까지 내려오는 그 15초를 참지 못하고 계단을 흘깃거린다. 1% 인내도 없다. 99%의 기다림이 싫은 것이다. 물론 그것들에 길들여져 있기에 우린 괴로운 선택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소싯적, 바람 부는 날이면 이름 없는 무덤가에 놀러가곤 했다. 살아있는 인간이 닦아놓은 죽음의 길, 그 길엔 자기 무덤도 미완성으로 남긴 채 떠난 모차르트의 눈물이 있고, 연인 콘스탄체마저 실성하게 만든 쓸쓸한 바람도 있었다. 버려진 번뇌들이 병풍처럼 널려 있지만 덧없음으로 오히려 아늑한, 누군가 토해놓은 어둠들이 널려 있지만 오히려 집 같은, 그래서 무덤은 사람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생배추처럼 푸른 심줄을 부여잡고, 절벽 위에 서서 뛰어내릴 수 없는 건 비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겁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 확산으로 사회적 고립이 심각해지고 자살자들이 증가하자 ‘고립.고독 담당 장관’을 만들었다. 일본에서 지난해 자살한 사람은 2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의 자살률은 전 세계 4위다. 2019년 자살 수는 1만3799명, 하루 평균 37.8명에 달했다.

사회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우린 ‘남’을 ‘님’처럼 살펴야한다. 어떤 이에게 그리움의 진폭이 커지고 있다면 ‘외롭다’는 것이 아니라 ‘괴롭다’는 방증이니까. 힘들수록 그리움의 총량은 커진다. 인간이란 어찌됐든 ‘같이’ 가는데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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