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보기 정치’는 간보다가 끝난다
‘간보기 정치’는 간보다가 끝난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5.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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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문방사우]
체리M&B 제공

의사파업이 끝나가던 2020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약간 비꼬는 듯한 글을 남겼다. 그는 간호사들에게 “코로나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느라 힘들 텐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냐”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역풍이 돼 돌아갔다.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이 엄연히 다른 데다, 코로나 정국에서 의사를 적으로 돌리고 간호사와 갈라치기하는 행태가 좀스럽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장삼이사들은 이런 문 대통령의 정치를 ‘간보기’라고 함축한다. 비싼 돈 들여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어놓고선 국민이 연금 납부액을 올리는 것에 반발하자 원점으로 돌린 적도 있다. 또 양도소득세 완화 얘기를 꺼냈다가 논란이 되자 ‘검토한 바 없다’고 했고 담뱃값 인상을 만지작하다가 접었다. 간보기에 능통한 김정은과의 밀애도 간만 보다가 끝났다.

아직 공개적인 정치행보를 하지 않는 ‘장외 대장주’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아직 ‘간보기’ 상태다. 그는 온갖 불법과 반칙으로 특권계급이 된 문재인 정권의 대항마로, 난세를 바로잡을 공정과 법치의 상징이 됐다. 물론 일각에서는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가 경제와 외교에 문외한이고, 나아가 역사가 함의하고 있는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겠느냐고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면서 국정운영 철학의 부재로 인해 곧 명멸할 그림자라고 폄훼한다.

하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는 조국 사태 이후 1년 반 이상 이어진 탄압에도 단기 필마로 버텨낼 만큼의 맷집을 지녔다. 또한 열광적 정치 팬덤을 등에 업은 제왕적 대통령과의 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은 뚝심도 있다. 윤석열을 대권주자로 키운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의 ‘윤석열 죽이기’였다. 문 정권의 악정(惡政)이 윤석열을 태풍의 눈으로 만든 것이다. 오히려 말끝마다 공정과 정의를 참칭한 정권이 ‘불공정’의 역풍을 맞았던 것 아닌가.

이제 남은 건 윤석열의 선택이다. 등판 시기를 놓고 저울질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흑묘백묘(黑猫白猫) 모양새가 애매해진다.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고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흑묘인지 백묘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장외에서 고양이 그림자만 드리운 채 쥐 잡는 흉내만 내는 것은 간보기 정치다.

‘선거의 귀신들’과 정치 낭인들은 회색지대에 올라타 검은고양이, 흰 고양이 놀음을 하고 있다. 제3지대서 시작하든, 제1야당에 입당하든 칼을 뽑아야한다. 윤석열의 인기는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김영삼 정부 때 제왕적 대통령을 들이받은 이회창 총리가 ‘대쪽’ 이미지로 벼락 대선 주자가 된 것과 닮았다. 그는 15.16대 대선 과정에서 줄곧 1위였건만 대통령이 되진 못했다. 고건·반기문·안철수도 그랬다. 좋은 것만 취하는 신비주의는 오래갈 수 없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게 정치다. 양자역학에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다. 상자를 열어서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다.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는 가능성의 상태로 병존한다.

21세 청년 술탄 메흐메트 2세(1432~1481)가 함선 70척을 산 위로 끌어올려 골든혼만 안쪽을 공격했을 때 천년 왕국 동로마의 명운이 갈렸다.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플 3중 성벽 쪽문 케르카포르타가 운명의 순간에 열려 있었다는 우연이 제국 멸망(1453년)을 앞당겼다. 위대한 운명의 순간은 그걸 장악하지 못하는 인간에겐 모질게 복수한다. 별처럼 빛나는 결정적 순간은 한번 놓치고 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앞으로 윤석열은 혹독한 검증을 받게 될 것이고 중도 탈락 가능성도 상존한다. 오로지 지지율에만 매달리고 여론의 눈치만 살피다간 실기(失期)할 수밖에 없다. 여론이 좀 불리하더라도 당당하게 나와서 정견을 밝히는 게 옳다. 대통령의 ‘간보기’는 시시때때로 타이밍을 놓치는 우(愚)를 범했다. 사과를 해야 할 때 재빠르게 사과해야 했지만 눈치를 보다가 때를 놓쳤다. 조국을 버려야할 때 잽싸게 버려야했지만 고집을 부리다가 망쳤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제 윤석열의 간보기도 그쯤 하면 됐다. 선거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고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눈치를 보는 정치인은 언젠가는 밑천이 드러나 패퇴하게 돼있다. 이재명, 이낙연, 정세균의 ‘딱한 간보기’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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