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과 악연의 한 모퉁이에서
인연과 악연의 한 모퉁이에서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5.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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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문방사우]

20대 청춘의 어느 언저리에서, 그것도 차디찬 자취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으면 웃음이 피식 나왔다. 눈물 같은 웃음이었다. 비참함을 숨기기 위한 반어법 같은 거였는데 라면도 가난했고, 먹는 자도 가난했다. 라면도 외로웠고, 먹는 자도 외로웠다. 라면처럼 가난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음식은 흔치 않다.

5년 전, 아르바이트 첫 월급을 받은 아들이 라면을 사줬을 때 ‘애틋하고 짠해서’ 목 넘김이 안 됐다. 해쓱한 국물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 가벼운 음식이 유년의 식성과 맞물려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먹고 살기 힘들어 라면조차 맘대로 먹지 못했던 과거와, 라면만큼은 맘대로 먹을 수 있는 현재의 기억이 짬뽕된 것인지도 모른다. 라면에 관한 소고(小考)는 혼자서 절망을 씹고, 외로움을 씹고, 눈물을 삼키던 값싼 운명과도 연결된다. 나를 눈물겹게 하던 그 맛, 꼬불꼬불 맹장을 뒤트는 유한의 욕망이, 더더욱 생각나는 요즘이다.

최근 결혼 25주년을 맞았다. 은혼(銀婚)이다. 누군가에게는 긴 세월이고, 누군가에는 짧은 시간일 테지만 개인적으론 길지 않은 여정이었다. 미국 작가 윌리엄 펠프스는 ‘인간의 기술 중 가장 위대한 건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라고 했다. 불교에서의 천생연분은 1000번의 생(生)을 다해야 만날 수 있다고 하고, 거리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사람도 300생(生)을 건너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힌두교는 팔천 겁(측정할 수 없는 시간. 1겁은 86억4000만년)의 시간을 인연의 반경으로 말한다. 하지만 해로한 할머니에게 천생연분의 다른 말은 ‘평생 웬수’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당초 다른 별에서 온 남녀가 함께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맛난 음식을 사주는 아들, 가엾어도 가엾은 내색하지 않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주는 아내는 우산 같은 존재다. 우산은 보통 흐린 날에 그 효용성이 드러난다. 맑은 날의 우산은 그냥 우산일 뿐이다. 더더구나 우산처럼 흔해빠진 것도 없어서 아무데나 두었다가 잃어버리기 일쑤다. 급할 때 찾으면 없는데, 평소엔 헌신짝 다루듯 한다. 잃어버릴 것을 알면서도, 잃어버리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산은 다음 비오는 날까지 제자리에서 현신한다.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으면, 헌신짝처럼 다뤘던 우산의 행방이 그립다. 우산은 주인이 비를 맞지 않도록 제 온몸으로 비를 맞아왔다. 우산의 소중함은 온몸이 비에 다 젖었을 때 생긴다. 친구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 건 궁색한 도피다. 같이 우산을 쓰면 둘 다 비를 맞게 돼있다. 왼쪽에 있는 친구는 왼쪽 어깨가, 오른쪽에 있는 친구는 오른쪽 어깨가 젖는다. 차라리 비를 맞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서 같이 비를 맞는 게 우정이다.

우리가 단맛 중독에 빠진 것은 돌아가는 꼴이 온통 쓴맛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도 ‘우산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설령 왼쪽 어깨가 젖을지언정 함께 갈 사람이 절실한 것이다. 평소엔 외따로 있다가도 외로울 땐 기꺼이 동행할 수 있는 ‘우산’ 같은 사람이 너무도 그리운 세상이다.

잘났든 못났든, 잘 살든 못 살든 인간은 행불행(幸不幸)의 부침 속에서 산다. 저마다 ‘십자가’ 하나씩은 짊어지고 산다. 그것은 세월의 무게가 잔뜩 실린 고통의 등짐이다. 오늘 이 시간이 내일의 과거가 되듯, 어제는 돌아오지 않고 내일은 여지없이 온다. 그렇게 시계추는 늙어간다. 그런 삶 속에서 같이 걷고 함께 하는 일은 고역이다. 이득을 따지지 않고 타박하지 않으며 돌변하지 않는 실용외교가 실리외교보다 항상 늦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뒤통수를 치는 ‘배반의 세상’에서 그럴듯하게 늙어가는 게 숙제다.

어제 차갑게 안녕을 고한 사람은 39억 9999만 9999년을 기다려 만난 사람이다. 버릴 줄, 잃을 줄, 놓을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당한 만남’이 더 중요하다. 가벼운 인연이었다면 애당초 만나지 않았어야 했다. 상처 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상처 가까이 다가서는 건 이율배반이다.

인연이 잘못되면 악연이 되고, 그 악연은 필시 원인이 있다. 정의와 공정, 가치가 훼손됐을 때 사람의 관계는 부정되고 훼손된다. 자신의 실리를 위한 것이라면 상대방은 불쏘시개가 될 것이고 본인은 불나방이 되는 셈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슬프다고 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정점(頂點)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론 가시밭길이다. 장구한 인연의 탄생과 소멸을 징벌하며 별을 헤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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