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다반사(茶飯事)
커피와 다반사(茶飯事)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8.12.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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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사우]
사진=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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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다반사(茶飯事)다. 차(茶)를 마시거나 밥(飯)먹는 것이 일상사라는 것인데, 차를 밥 먹듯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린 사람을 만나면 숟가락 개수부터 챙긴다. ‘쪽(수)’를 따지는 것이다. 그리고 숭늉이 아니라 차를 찾는다. 차 마시는 일은 고상한 취미다. 아니, 달리 말하면 ‘고상한 척하는’ 습관이다. 물론 진짜 좋아서 하니 다반사다.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사람에게 다반사는 허세에 가깝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흔하디흔한 일이 어떤 이에게는 사치다. ‘밥벌이’의 무거움 때문이다. 그만큼 다반사는, 다반사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차를 밥 먹듯이 하는 건 그렇고, 최소한 밥을 밥 먹듯이 하면 족하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신다. 낮엔 다반사, 밤엔 주반사(酒飯事)다. 물론 주반사가 일상사는 아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 쓰고 또 쓰고 한없이 쓴다. 쓴다는 것이 다반사다. 하릴없이 쓰는 게 아니라 꾹꾹 눌러쓴다. 디지털퍼스트의 맥(脈)을 잇기 위해서 치열하게 쓴다. (스마트폰 노트에다) 걸으면서 쓰고 버스 안에서도 쓴다. 머리맡에 핸폰을 놓고 자다가, 선잠에서 깨면 어렴풋하게라도 쓴다. 그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래도 여한 없이 쓸 수 있으니 족하다.

▶먹고 마실 땐 담소가 안주다. 식담과 차담이다. 담소와 다향(茶香)의 온기가 결합됐을 때 비로소 식사는 완성된다. 다관(茶罐)에 잎을 넣고 오래 우려내는 것은 기다림의 습속이다. 기다리지 않으면 다도(茶道)가 아니다. 하지만 차(茶)는 식었다. 우린 커피를 마신다. 다방(달달한 인스턴트커피)에서 팔던 커피가 아니라 아메리카노(에스프레소에 물을 잔뜩 탄 것)다. 다방(茶房)도 원래 커피가 아니라 차를 마시던 곳이었는데 주객이 전도됐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서 코피 나도록 마셔대는 커피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조용히 잘 수 없는 현실에서의 진정제다. 그런데 사실은 아침에 먹는 그 한 잔이 마침맞다. 그 한 잔 이외엔 맛이 없다. 그저 '습관'을 마실 뿐이다. 그래서 쓰다 못해 떫다.

▶시간이 속절없이 ‘훅’ 간다. 밥벌이하려면 굴욕을 참아야하는 일이 다반사다. ‘밥’은 ‘돈’만 뜻하는 게 아니다. 밥은 자존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했으나, 자존이 없는 밥은 목에 걸린다. 살기 위해 밥을 먹지만 밥은 밥으로써만 그 의무를 진다. 밥을 사준다고 사냥개가 되라고 말할 수 없다. 개는 자기 밥그릇만 쳐다볼 뿐 자존을 원하지 않는다. 세상은 점점 더 비열해지고 있다. 지겨운 밥벌이가 다반사이긴 해도 ‘밥’과 ‘자존’을 엿 바꿔 먹듯 쉽게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엿’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밥을 벌기 위해 밥을 먹고, 밥을 찾아 채비를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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