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풍물이 아쉬웠어요" 조용한 시골마을서 ‘한바탕 축제’
"사라져가는 풍물이 아쉬웠어요" 조용한 시골마을서 ‘한바탕 축제’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10.10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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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전통문화 계승·전승 꿈꾸는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
60·70대 어르신 단원들, 한 달 연습해 멋진 가락 연주
‘충렬사 마을’ 주민안녕·무병장수·자손번창·국가안녕 빌어
“마을행사 아닌 세종시 축제에도 참여하는 계기되길”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 공연. 미디어붓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 공연. 나재필 기자

작은 마을에 왁자지껄 풍악이 울러 퍼졌다. 삽과 호미 대신 장구와 꽹과리를 들고, 사라져가는 풍물(농악)을 지켜내기 위한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풍물놀이가 열린 세종시 장군면 하봉(下鳳) 마을은 봉황새가 날아와 앉는 형상에서 유래했다.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하산리(下山里)와 봉곡리(鳳谷里)에서 하(下)자와 봉(鳳)자를 따 ‘하봉(下鳳)’이 됐다. 200세대 376명의 주민은 중산천 연변의 평야와 산기슭에서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산다. 하천 유역과 평야지대에는 새뜸·황골·하산 등의 촌락이 풀꽃처럼 앉아있다. 해발고도 50여m의 저지대에 중산천(中山川)이 동서방향으로 흘러 대교천에 합류하고, 중산천에 의해 형성된 40여m의 충적평야가 있다. 가운데 하봉저수지가 있다.

이 작은 마을에서 희망공동체로 모인 13명의 단원들은 전통 풍물(농악)의 전승·계승을 선언했다. 풍물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음은 물론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돼 있다.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이자 대동신명의 소리인 것이다. 하지만 농악을 해왔던 사람들과 전통악기 초심자의 결합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나 피땀 나는 연습에 몰입했다.

하봉리 사람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기고사(旗告祀:마을의 상징인 농기(農旗)를 모시고 지내는 고사)를 지내왔다. 농신(農神) 또는 신농씨(神農氏)와 관련된 깃발을 꽂고 논일을 했고, 일을 마친 후에도 농기를 선두로 해 길군악을 연주하며 돌아오곤 했다. 또한 매년 3월25일 하봉리 충렬사에서 류형 장군을 기리는 제향을 열어오고 있다. 류 장군은 전사한 이순신을 대신해 해군을 진두지휘한 무장(武將)이다.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 공연. 미디어붓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 공연. 나재필 기자

풍물단원은 13명에 불과한데 대부분 60~70대다. 세종시 마을 만들기 경관사업 주민역량강화사업에 선정돼 다시 뭉치는 계기가 됐다. 노인정 안에 모인 단원들은 쇠(꽹과리), 징, 장고, 북을 어깨와 팔에 걸치고 장단을 시작했다. 가락을 치며 춤을 추고 비나리, 고사소리, 고사덕담 등과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여러 개의 소리는 하나의 음(音)으로 다시 모여 청량한 공명통으로 재탄생했다. 짧은 기간 연습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물은 흥과 신명으로 가득 채워졌다.

하봉2리 이장은 “아침에 일터로 갈 때부터 저녁에 놀을 등지고 귀가할 때까지 풍물은 삶 자체였어요. 농악이란 어디서나 판을 벌일 수 있고,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민중음악이죠.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풍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며 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그래서 다시 북채를 잡은 겁니다. 우리 것을 우리 스스로 지켜내기로 한 거죠. 1년 간의 평안에 감사드리고 1년의 수고로움에도 감사하고, 다가올 1년의 미래를 기원하기 위한 집단의식입니다.”

단원들의 가락은 달뜨지 않고 정확한 지점에서 강력한 하모니를 이뤘다. ‘얼씨구 좋다~’ 가운데 자리한 상쇠의 지휘에 따라 대열을 이뤄 기하학적인 도형의 진법으로 장사진, 방울진, 오방진 등의 모습을 갖추기도 했다. 농주를 한잔 걸친 어르신들의 손놀림과 추임새는 가볍고 경쾌했다. 마치 신들린 듯한 몸짓이었다. 불콰한 얼굴을 한 장고재비는 원을 돌며 고개를 연신 흔들어 흥을 돋웠다.

풍물은 앞굿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치배들과 뒷굿에서 신명을 주도하는 잡색(허두잡이)으로 구성된다. 치배들은 상쇠(치배의 총지휘자), 부쇠, 수징, 부징, 상장구, 부장구, 큰북잡이, 상소고, 부소고 등으로 이뤄져 있다. 본디 도포에 관을 쓰고 부채와 담뱃대를 든 양반광대, 목탁을 든 회색 바지저고리의 조리중, 붉은 두루마기 차림의 계화를 꽂은 패랭이를 쓰고 춤을 추는 화동, 짧은 두루마기 복장에 꿩작목을 패랭이에 꽂아 쓴 창부, 상쇠 복장의 농구, 평복 차림의 할미, 남자가 여장을 한 각시, 체중이 가벼워 큰북잡이나 소고재비가 들어 올리면 그 위에서 춤을 추는 무동으로 구성되는데 이날은 평상복차림이었다.

하봉리 풍물단을 지도한 김익세 씨는 웃다리농악 이수자다. 웃다리농악은 충청지역 일대에서 연희되는 농악이다. 웃다리농악이 다른 지역의 농악과 구분되는 큰 특징은 칠채가락과 무동타기다. 웃다리농악의 판제는 인사굿, 돌림벅구, 당산벌림, 칠채오방감기와 풀기, 무동쾌자놀이, 소고절굿대놀이, 십자걸이(가새치기), 사통백이, 원좌우치기, 네줄좌우치기, 쩍찌기, 풍년굿, 고사리꺾기, 도둑굿, 소고판굿놀이, 무동꽃받기, 개인놀이(따벅구, 설장구), 뒷풀이, 퇴장굿으로 이뤄져있다.

한마당이 끝나자, 어느 연장자가 ‘손님에게 음식도 대접하지 않고 뭐하누’라며 끌탕을 한다. 따스한 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땀에 젖은 단원들은 농주를 한 순배 돌리며 여흥을 이어간다. 놀이와 유희, 그리고 예혼(藝魂)이 뒤섞인 가을밤의 들썩거림은 관객마저 공연자의 일원이 되게 만드는 마력 같은 거였다.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 공연. 미디어붓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원들. 나재필 기자

두 마당으로 이뤄진 풍물은 대략 3시간 동안 진행됐다. 1시간 넘게 이뤄진 한마당에서도 단원들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가락은 다소 단조로웠지만 겹가락을 비롯해 변주가 신명나고 다양하게 전개됐다. 또한 여러 가지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으며 맺고 끊음이 분명했다. 이들의 가락은 근본적으로 남사당패의 가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충남 지방의 걸립패의 영향을 받아 예능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뜬쇠 출신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고난도의 기능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신명 나는 박자에 저절로 어깨가 흥청거린다.

상쇠가 덕담했다. 고사 덕담은 일반적으로 세마치장단의 풍장소리에 맞춰 회심곡을 부르듯이 부른다. 덕담이 시작되면 쇠·북·장구·징이 모두 소리를 낮춘다. 쇠는 가볍게 타드락거리고 북은 피와 통을 가볍게 친다. 장구를 칠 때는 열채는 갓을, 궁구리채는 피를 다드락다드락 친다. 징은 여린 울림소리로 세마치장단에 한 번씩 치다가 노랫소리를 낮추면 큰 소리로 울린다.

“만수복덕 누리라고 주왕(조왕)님이 들어오셨어. 자손만대 부귀영화 누리라고 칠성님이 오셨네. 동방청제대장군 동작지형 만사 개시오. 서방백제대장군 서성지형 만사형통이요. 남방적제대장군 남정지형 지극정성이요. 북방흑제대장군 북평지형 만인평온이요. 에~에이~에 축원갑니다요~덕담갑니다요. 세상 만물이 귀하다하나 사람보다 더 귀하랴. 오늘 만장하신 인사님들이 모이셨으니 복이나 다뤄보시것다. 집집마다 만복을 주옵실 때 아들 낳으면 효자 나오고 딸을 나면은 효녀가 나오고, 며느리 보면 열녀 보고, 댁 가중에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일을 가드래도 만수무강 춘하태평 하옵소서. 마을의 액을 막아주시고 평화를 기원하나이다. 무병장수하게 하옵시고 자손번창을 원합니다. 학업에 정진해서 마을에 큰 인물이 나게 해주시옵고, 풍년농사 이루게 해 주시오. 집집마다 고추장·간장·된장도 잘되게 해주시옵고~”

상쇠의 덕담에 단원들은 소리 내어 축원했다. 일렬로 나가기 직전 한 군데에 모여서 북이 점고하는 가락을 친 다음, 징수가 징을 느리고 크게 세 번을 치고, 다스림 가락과 이채를 친 뒤에 맺는다. 상쇠의 삼채 가락에 맞춰 놀이판을 향해 일렬로 나가 원형을 만든 다음 제자리에서 이채로 맺고, 절가락을 치며, 밖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한다.

잽이(농악꾼)들은 삼채가락을 치면서 당산대형을 풀어 반원을 그리며 나간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며 태극선에 맞춰 행렬을 지으면서 상쇠원-잽이원-수벅구원-끝벅구원의 순서로 풀어 나오며 큰 원을 만든다. 풍물을 이끄는 주요 가락은 한국 음악의 기본형인 3분박 4박자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가락이 멋지고 흐벅지며 아름답다.

이들은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원리에 따라 비교적 빠른 잦은몰이형(삼채굿)과 박자가 좀 느린 중중몰이형(굿거리)을 연주를 이어갔다. 풍물가락은 개별적인 악기들이 박자와 강약, 고저완급의 조합을 통해 통일된 리듬음악으로 조화를 이룬다. 온몸의 피부에 닭살이 돋는 전율이자 청각적인 마사지다. 쇠, 징, 장구, 북의 타악기가 내는 소리는 청자(聽者)에게 자지러지고, 푸지고, 신명을 긁어내고, 발과 몸을 저절로 놀리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단원들은 상쇠의 지휘에 따라 고함, 추임새를 불규칙하게 뱉어낸다. 이 소리들은 하나의 규칙적인 흐름의 가락이 되고, 이 신명소리의 흐름들이 어우러져 풍물이 된다.

대단원의 공연을 끝낸 김익세 씨가 단원들과 가쁜 호흡을 멈추고 말했다.

“풍물은 전통문화의 뿌리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전통예술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우리 민중의 삶 속에서 전통문화가 계승·발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 힘들 때, 삶의 허기가 느껴질 때, 농악으로 채워나가는 일은 지역공동체에 있어서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소망했다. 한국 전통문화 풍물이 대(代)를 이어 계승되고, 나아가 세종시축제 등 모두가 함께 하는 향연 속에서도 꽃을 피우기를…. 풍물단원들은 밤늦도록 가락에 빠졌다. 사위(四圍)가 칠흑처럼 조용한 시각에 울려 퍼진 소리는 평온했고 울림이 컸다.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 공연. 나재필 기자
세종시 장군면 하봉2리 풍물단 공연. 나재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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