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직 아름답다-맹수연
웅크리고 있던 전구의 발가한 빛이 깨지고
끈끈한 아침이 터져 나왔다
트럭 아래 몸을 감추고 있던 고양이가
오늘도 여러 개의 목숨을 사냥하러 나서고,
감자탕 가게 아저씨는
지난 밤 어둠을 미처 털어내지 못한 털모자를 덮어쓰고
오늘도 몇 개의 목숨을 지키러 나온다
아침의 거리는 결코
순리대로 흐르는 법이 없다
한 사내가
전봇대 아래에 모든 괴로움을 토해놓고
시린 입김처럼 잠들었다
매일의 인생을 소주 한잔에 팔아먹고 그는
소리없이 짓밟는 법을 배웠다
한 때 그의 전부였던 추억들
삶을 유지하게 했던 작은 절망의 순간들과
오징어 눈깔처럼 굴러다니던 주머니의 동전들은
사내의 발밑에서 흐리멍텅한 비명을 지른다
덕분에 그는 아침에 잠들 수 있다
아무리 가느다란 햇빛이라 해도
그것은 결국 거리의 대부분을 잡아먹는다
죽음으로 채워지는 희망들은
날카로운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부활을 꿈꾼다
어차피 인생의 많은 부분이
망각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폐경을 맞은 창녀는 또 하나의 아침을 축복하고
전봇대 사내의 발은 얼어간다
삶은 누구에게나 자비롭다
◆맹수연 시인 약력
△1987.2 세상과 만남. 로맨티스트 운명론자 △2009 서정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선진문학 작가협회 회원 △(선진문학 동인문집) 민들레 外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학사졸업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공학석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버니버닛㈜ 대표이사 △㈜엑스컴퍼니 대표이사 △2018 지역언론 작품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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