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수능]수능야방성대곡 "여러분을 응원합니다~파이팅"
[2021년 수능]수능야방성대곡 "여러분을 응원합니다~파이팅"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11.17 11: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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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1]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에 아들은 학교를 향했다. 그리고 어둠이 먹물처럼 사위(四圍)를 감쌀 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둠에서 출발해 어둠으로 귀휴하는 그 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마는, 난 단 한 번도 자식의 안녕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인생에 대해서도 말을 섞지 않았다.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침묵했다. 난 항상 바빴고,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간혹 궁금하고, 묻고 싶고, 말하고 싶을 땐 여지없이 취해있었다. 그래서 또 침묵했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흐르는 '의도된 부침(浮沈)'이 끈을 잇는 최소한의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을 뿐이다. 바보였다. 끝까지 침묵했으면 좋았으련만···.

▶사실은, 강한 척하려고 모른 체했다. 안 아픈 척하려고 피했다. 남들에게 기죽을까 떵떵거렸고, 내 눈에 밟힐까봐 큰소리쳤다. 책에서 천 가지 곡식이 쏟아져 나온다고 헛소리했으며, 열심히 공부하면 세상이 네 것이 된다며 싸구려 권학가(勸學歌)를 불렀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알량한 거짓말을 했고, 눈이 감기면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고 종용했다. 미안하다! 아들아. 먹고 싶을 때 사주지 못했고, 입고 싶을 때 사주지 못했다. 맘 놓고 과외 한번 시키지 못했다. 아빠의 아빠처럼 침묵했고, 아빠의 아빠처럼 무관심했다. 진눈깨비 쏟아지던 어느 겨울날, 네 손을 잡고 한없이 걷던 기억이 스친다. 그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 온기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아들아 아니? 그 힘으로 견뎠다.

▶서열사회를 탓하면서 서열을 매긴 것에 대해 반성한다. '최선'을 다하라고 하면서 '최고'가 되길 바랐던 욕심을 반성한다. 멀고 험한 길 완주하라고 하면서 빨리 걷게 한 채찍질을 반성한다. 내가 저지른 짓은 아니지만 20년간 15차례 바뀐 비정상적인 수능제도도 반성한다.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기계처럼 오가며 얼마나 괴로웠니? 새파란 달빛 쏟아지는 골목길을 걸어오며 얼마나 두려웠니? 아플 자유조차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오며 얼마나 야속했니? 그걸 알면서도 무지했던 내가 오답이다. 성공은 실패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다던 네가 정답이다.

▶아빠는 뭐든지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후회할일들을 만들지 않는다. 학창시절이 후회스러웠고 청춘이 후회스러웠기에 후회 없도록 살려는 것이다. 네가 아빠가 되면, 조금은 아빠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아빠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래, 오늘이 바로 그 어둠을 떨치고 네가 어른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옷은 따뜻하게 입었니?”

 

신문지상에 나깠던 나재필 칼럼 캡처.
2014년 11월 신문지상에 실린 나재필 칼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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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

▶30년 전 아버지는 자식의 공납금을 위해 밭뙈기를 팔았다. 소도 팔았고 키우던 강아지도 팔았다. 그런데 언젠가 사과 한 알을 몰래 따먹었다가 혼꾸멍난 적이 있었다. ‘자식농사’를 위한 밑천이 ‘과수농사’였는데 왜 썩은 걸 먹지 않고 온전한 걸 먹었냐는 게 이유였다. 과수원집 아들은 까치가 쪼아 먹다 남긴 사과를 먹고, 슈퍼마켓 아들은 유통기한이 끝난 과자를 먹어야한다는 걸 잠시 잊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단지 죄라면 배고픈 입(口)이 문제였으니까. 그 사건이후 난 사과를 돈 주고 사먹지 않는다. 비싸서가 아니라 그때의 차가운 눈물을 가여운 '입'이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춥다. 그냥 추운 게 아니라 뼛속까지 시리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며 ‘서정적 허세’를 부려보지만 역시 추운 건 폭거다. 더더욱 맘이 여릴 대로 여려진 상태에서는 거의 고문에 가깝다. 수능이 끝난 후 내내 혼란스러웠다. 낙엽이, 자신의 붉은 나신을 내어주는 걸 바라만 봐도 그냥 눈물이 흘렀다. 자신도 모르게 떨궈지는 눈물은 차디차다. 그리고 적막하다. 몸으로 한기(寒氣)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마음의 저변까지도 얼리기 때문이다. 이제 작은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뭐 그리 야단일까 마는, 아들의 가슴팍을 꼭 끌어안자 내 가슴이 시려왔다.

▶30년 전, 대학고사를 본 아버지는 수학(數學)을 망쳤다. 문제는 있었으나,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대학, 직장, 연애, 결혼, 인생으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됐다. 한국에서의 수학점수란 그런 것이다. 30년 후, 수능을 본 아들은 수학을 망치지 않았다. 고작 2문제만 틀렸다. 그런데 결과는 3등급이다. 비루먹을 물 수능이 ‘학문’을 ‘항문’으로 만들었다. 어려워도 문제고 쉬워도 문제다. 그러나 어쩌랴. 국·영·수 점수대로 팔자가 바뀌는 이 나라, 이 교육의 저급한 스캔들이 문제인 것을. 실망하지 마라. 아프니까 청춘이고, 저리니까 중년이다. 그리고 쑤시니까 노년의 삶 아니던가.

▶아들아, 정답이 안 보인다고 겁을 냈더냐.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다. 인생, 저 먼발치에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해 척후병까지 보내 정탐도 해봤지만 인생은 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답이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찾아가는 거다. 보이지 않으니까 가보는 것이고, 안보이니까 두드려보는 것이다.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있는 건 불찰이 아니라, 예고된 숙명이다. 때론 그 길이 불온하고 불손하지만 우리, 도망치지 말자. 인생에 대해 변명도 하지 말자. 네가 만점은 못 받았어도 너의 노력만큼은 정녕 만점이었다. 네 인생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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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개의 칼럼은 2014년 11월 필자의 아들이 고3 수능을 치를 당시 썼던 글입니다.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봐도 그때의 소회가 남다릅니다. 2021년,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과 수능생을 뒷바라지 하느라 1095일(3년)을 바친 부모님들에게 바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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