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꿈으로 피어나소서.
천상의 꿈으로 피어나소서.
  • 나인문 기자
  • 승인 2022.11.03 18: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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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망실하게 있는데/ 너는 내 곁에 다시는 올 수 없다니/ 새순 돋고 꽃이 피어도 서럽다/ 하늘보다 더 서럽고 바다보다 더 서럽다.’

김수열 시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 중 가장 큰 자식잃은 참척(慘慽)의 고통을 그렇게 절규했다.

꽃다운 청춘들이 이태원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이후 먹지도, 제대로 잘 수도 없는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감히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부모가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의 고통을 견디기까지 눈물은 또 얼마나 많이 흘려야 할까. 살아있는 자가 감히 어떤 말로 그 고통을 대신할 수 있을까.

사망 156명, 부상 151명 중 중상 29명. 총 307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압사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다.

한순간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짐승같이 어두운 영안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분노와 슬픔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다.

국가가 책임지지 못한 속절없는 죽음 앞에 아무리 애타게 자식들의 이름을 불러봤자, 살아서는 돌아 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가여운 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인파 속에서 체온이 얼어붙는 것을 느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맥박조차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생사기로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운 부모형제와 친구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러져갈 때 얼마나 아팠을까?

꽃잎처럼 흩어진 가여운 그 이름을 불러보고 또 불러 봐도 대답이 없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이태원의 대참사를 물끄러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가슴도 잠겨버렸다.

우리의 믿음도 잠겨버렸다.

그렇게 떠나간 '꽃'들은 대한민국에게 묻고 있다.

왜 사지(死地)로 내몰 수밖에 없었는지,

어른들의 잘못으로 왜 젊은 청춘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지,

묻고 또 묻는다.

아!

제 자식은, 곁에 두고 있어도,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법인데,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으니 부모들의 한도 사무친다.

백혈병을 앓는 아빠에게 골수를 이식해주고도 외려 

“아빠의 딸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던 갸륵한 딸의 메시지가 가슴을 친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생몰(生沒)의 카운터를 세며 지옥의 묵시록을 쓴다.

그 절명의 푸르른 꿈들은 산산조각 났지만

영문도 모르고 유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가슴에 담는다.

국민 모두가 상주(喪主)가 되어 가여운 혼백들을 가슴에 묻는다.

스러져간 청춘이여!

스러진 노여움이여!

다시 꽃이 되어

다시 꽃이 되어

천상의 꿈으로 피어나소서.

이태원 대참사 희생자들의 영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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