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길에서 배우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33. 길에서 배우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 미디어붓
  • 승인 2019.1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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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망상 라이딩 도로.
동해 망상 라이딩 도로.

길은 휘어져 거대한 활을 닮았다. 그리고 유목민을 닮았다. 고개를 오를 수 있는 것은 고개 너머를 상상할 수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갑자기 회오리가 불어도 웃을 수 있는 것도 모퉁이를 돌면 편안해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휘어진 옛길과 모퉁이는 그 궤적을 충분히 가늠할 수가 있다.

길은 시작과 끝이 분명히 있고, 구비의 끝에 가면 다시 돌아올 구비가 또 있게 마련이다. 흔히 사람들은 유랑자를 떠올리면 자유에 대해서만 그린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곧장 앞으로 나갈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쉬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으며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수도승이 그러하듯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여행자는 금세 지친다. 아주 사소한 계책들이라도 머릿속에 정리돼 있어야 다음날이 온다.

길은 이어지는데 가치가 있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연결하는 것은 길뿐이다. 그래서 길은 가급적 순환하지 않는다. 순환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다.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돌아보면 늘 그 자리다. 길은 세포 사이에 퍼지는 피처럼 새로 태어나거나, 소멸하면서 사람들 사이로 흘러 다닌다. 길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집밖의 큰 마당일뿐이다. 공용의 장소, 공공성을 띤 길은 사람의 죽음까지도 관통한다. 영혼이 없는 길은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죽어간다.

길은 서로 다른 언어를 갖고 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새벽의 박명 속을 거닐며 무엇인가 꾸준히 말한다. 길은 한 겹, 두 겹, 제 몸의 부피를 늘리면서 땅과 교유한다. 그리고 욕심을 던다. 소금배로 돈을 모으면 욕심이 생겨 조금 더 싣다가 침몰하게 되는 이치를 꿰뚫는다. 그래서 길은 비우고, 비우면서 사람들을 채운다.

발길과 발길, 통행과 통행이 이어지며 새로운 길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길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집요함이다. 모든 길은 오로지 바다나 산에 의해서 단절되지 않는다. 단지 또 다른 길을 연결하는 통로일 뿐이다. 나그네가 길의 종점에서 항상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건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다.

길 끝에서 만난 청신한 수죽, 댓잎에 떨어진 햇살은 바람에 날려 바스러지듯 사라진다. 소슬바람이 불어 댓잎끼리 스치는 소리는 영혼을 깨우는 목탁이다. 대나무는 좀처럼 꽃이 피지 않지만 꽃이 필 경우에는 모든 대나무 밭에서 일제히 피어 대나무 스스로의 영양분을 모두 고갈시켜 말라죽어 간다. 이별의 길 냄새를 아는 까닭이다. 여행은 탈출인 동시에 은둔, 도피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세속과 교제를 끊고 술잔을 나누며 청담(淸談)에 열중했던 것도 피안 (彼岸)의 가르침이다.

길은 언제나 풍경과 밀애 한다. 냄새와 소리, 촉감의 층(層) 사이로 침잠하며 후광 또는 아우라(Aura)를 펼친다. 우주, 태양, 하늘, 나무, 바람, 풀, 지평선, 어둠, 여명, 침묵까지 뒤엉켜 영원한 덧없음에 대한 자각을 상쇄한다. 단순한 시각적 골조가 아니다. 각각의 감각이 뒤섞여 하나의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풍경은 적당한 두께로 퇴적하며 완벽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연금술이다. 가던 길이 좁아진다고 해서 생각의 양이 적어지지는 않는다. 넓은 길을 오고가며 이 생각 저 생각 들던 것이 길의 깔때기, 좁은 길에 접어들면서 가장 긴박하게 압축되는 것이다.

여행자가 길을 떠나는 것은 떠날 때가 됐기 때문이다. 길은 길에서 시작해 길에서 끝난다. 한걸음, 한걸음 길을 나서는 것도 ‘두 발’이고, 바이크 엔진도 ‘두 발’이다. 그 어느 것도 결국 두 발에서 시작되고 두 발에서 끝난다. 때문에 두 발은 유목(遊牧)의 피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유전자 또한 농경과 유목에서 나왔듯, 많은 여행자들은 걷고 달리면서 땅의 이정표를 만들어낸다.

길의 끝은 시원(始原)이고 하류의 끝은 소멸이다. 길에서 인생을 배우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길다운 곧음, 길다운 느림, 길다운 격식은,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시간에 가깝다. 때문에 길은 대면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대화해야 할 상대다.

달팽이는 느리지만 뒤로는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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