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여자든 남자든 바람 드는 곳은 ‘가슴’이다
35. 여자든 남자든 바람 드는 곳은 ‘가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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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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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다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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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동(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경기도 용인시는 ‘여성특별시’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여성우대·양성평등 정책을 펴겠다는 구상이다. 그런 정책을 표방하는 용인시에 ‘유방동’이라는 지명은 괴리다.

그러나 상상하지 말라. 봉곳이 솟은 처녀의 가슴이나 모유를 수유하는 여성의 생식기관인 유방(乳房)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중국 한(漢)나라의 제1대 황제(재위 BC 202~BC 195:진나라 말기에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이기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실현) 유방(劉邦)과도 연관이 없다.

유방동(柳防洞)이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유곡리와 방축리를 병합해 앞 글자를 딴 지명이다. 그러나 마을회관에 걸린 ‘유방6통 부녀회’, 공동주택 이름인 ‘유방타운’ 등 거북스러운 현판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어찌하랴. 불편을 호소했던 주민들도 이젠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며 유방어린이공원, 유방경로당 등 유방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다.

여자가 봄을 타고 남자가 가을을 타는 것은 순전히 바람 탓이다. 즉 바람이 유죄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면 여자의 가슴엔 엽록소를 잔뜩 머금은 핑크빛 사랑이 돋아난다. 그 바람은 때론 첫사랑의 서툴렀던 키스로 재생되기도 하고 때론 나이 먹어가는 자신의 변화에 경종도 울린다. 그래서 봄바람은 여자의 치맛바람이다. 들썩들썩, 괜히 가슴이 벌렁댄다. 다만 봄바람은 다소 변덕스럽다. 마치 조울증에 걸린 듯 웃다 울다 종잡을 수가 없다. 바람으로 치자면 습하고 무더운 ‘된마(동남풍)’ 정도라고나 할까.

남자의 가을바람은 센티멘털 와인드(wind)다. 모두가 시인이 되거나 혹은 광인이 된다. 별것도 아닌데 폼을 잡게 되고, 별일도 아닌데 눈물이 나기도 한다. 이렇게 개폼을 잡을 때에는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이다. 괜히 토를 달거나 피식 웃기라도 하면, 일이 커진다. 바람으로 치자면 ‘하늬바람’ 정도다.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인데, 온랭이 아닌 중탕 정도의 세기다. 가을이 되면 남자들은 바람이 잔뜩 든다. 고삐 끊긴 야생마처럼 기웃대고 서성거린다. 특히 나이 먹은 사내일수록 수컷의 본능을 드러낸다. 일종의 가을 발작이다. 바람처럼 웃다가 울다가 바람처럼 떠나려한다. 고로 가을은 무죄, 가을바람은 유죄다.

여자든 남자든 바람의 궁극적인 수혜자는 가슴(유방)이다. 가슴이 먼저 느끼고 그 다음이 몸이다. 눈물이 먼저 나는 곳도 실은 ‘눈’이 아니라 ‘가슴’이다. 가슴이 울고 그 다음에 눈에서 눈물이 난다. 기억을 추억하고, 추억을 기억하는 장소도 가슴이다. 그때가 좋아서 복고로 가는 것이 아니다. 잊지 않고 싶어서 기억해낸다. 그런데 사람이란 기억하고 싶은 것, 추억하고 싶은 것만 저장하려는 습성이 있다. 옛 연인이 아직도 기억 속에서 좋게 남아있는 건, 나쁜 추억은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달콤했던 일만 작위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편집, 짜깁기다. 아름다운 기억일수록 오류가 많은 이유다. 결국 복고는 과거의 반추가 아니라 미래다. 기억해내면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고치고 또 고치기에 남는 건 세월의 거죽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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